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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 새 코스 ⑯] 풍요를 주고도 잊혀진 호수

바이크조선 | 2021.04.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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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아산 삽교호 일주 37km

아산만 남쪽 삽교천 하구에 자리한 삽교호는 1979년 완공된 삽교천방조제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예당평야를 진정한 곡창으로 만들어낸 주역으로 호수에는 수만 마리의 철새가 한가롭고, 외곽을 두르는 둑에는 강태공들이 여유롭다. 방조제 서단은 퇴역한 군함을 전시한 함상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지만 찾는 이는 많지 않다.

삽교호 동안의 아득한 둑길. 드넓은 호수와 들판의 광활함을 함께 누비는 탁 트인 개방감이 각별하다.

예당평야는 이름과 장소부터 예쁘고 매혹적이다. 삽교천의 유역에 해당하는 예산과 당진 일대의 평야여서 두 지역의 앞자를 따왔다. 지평선이 아른거리는 호남평야 정도는 아니나 가슴과 시야가 탁 트이는 광활한 들판은 산악지대가 지천인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정서적 공간적 해방구다. 충남에 들지만 아산면을 경계로 경기와 접하고 있어 수도권에서 가까운 것도 현실적 미덕이다.

전국적인 규모의 예당평야지만 예전에는 간석지가 많고 용수가 부족해 가뭄과 홍수에 대단히 취약했다. 삽교천방조제를 쌓고 삽교천 하류를 담수호로 만든 덕분에 예당평야는 비옥한 곡창으로 거듭났다. 길이 3,360m의 삽교천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삽교천 유역의 당진, 아산, 예산, 홍성 4개군 22개 읍면에 걸친 2만4700ha가 전천후농지가 되었고 방조제에 놓인 도로 덕분에 서울~당진 간은 40km나 단축되었다. 거대한 인공호수가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것은 물론이고, 겨울에는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하늘에서 보면 두 개의 큰 뿌리를 내린 인삼 모양의 이 호수를 일주한다.

삽교호의 그날

삽교호의 유래를 아는 사람들은 그 날을 잊지 못한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방조제 준공식이 열렸고 이 자리에 참석하고 귀경한 대통령은 그날 밤 세상을 떠났다. 부국강병 측면에서 한민족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었던 한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후일의 목격담에 따르면, 당일 준공식장에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돌풍이 일고 어디선가 나타난 노루가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물론 이는 사건 후에 되돌아볼 때 이상한 징조로 느껴지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별일도 다 있네”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삽교천은 1868년 일어난 독일인 오페르트에 의한 남연군묘 도굴사건에도 등장한다. 쇄국정책을 견지하는 조선과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오페르트는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시신을 탈취해 흥정할 계획을 세운다. 일본을 거쳐 온 오페르트 일당은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예산군 고덕면 구만리)에 상륙했던 것이다. 묘실이 워낙 튼튼해 오페르트의 도굴 계획은 미수에 그쳤지만 이 일로 흥선대원군은 쇄국방침을 더욱 굳히게 된다. 지독한 쇄국정책은 세계사의 흐름에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집권자의 조상묘까지 파헤친 것은 유교를 국교 삼은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서구열강 입장에서도 만행이었다.
   
삽교천은 이 땅에서 극히 드물게도 북쪽을 향해 흐른다. 그것도 흐름의 방향이 도성인 한양을 정통으로 겨누고 있어 절대 권력의 안위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풍수도참에 민감하던 당시, 왠지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오페르트 사건도 그런 편견을 더하지 않았을까.

이제 삽교천은 상류의 작은 물줄기로만 남았고 하류는 광대한 삽교호에 희석되었으나 어디까지가 호수이고 하천인지는 모호하다.

화산함(왼쪽)과 전주함을 앞에서 보았다. 속도를 중시하는 전주함의 날렵한 선수가 칼날처럼 날카롭다.


화산암 내부는 특이한 시설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해군과 관련된 전시물도 풍부하다.


전주함 함교(조타실)의 함장석에 앉은 ‘뽈락’ 김태진 편집위원이 “발사!”를 명하고 있다.

함상공원의 군함 두 척

삽교천방조제 서단은 놀이동산과 포구, 공원이 혼재하는 관광지로 꾸며져 있다. 그중 명물은 1999년 퇴역한 상륙작전함인 화산함(4080톤, 길이 99.6m, 1945년 미국에서 건조)과 구축함인 전주함(3500톤, 길이 118.9m, 1944년 미국에서 건조)이다. 전국 여러 곳에 퇴역 군함을 전시하고 있지만 2대가 나란히 있는 곳은 없다.

함정 내부는 해군의 역사와 주요 전투 상황, 장비, 전투 영웅과 관련한 내용들이 잘 전시되어 있어 제대로 보려면 따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전주함 갑판에는 함상카페가 있어 군함에서 커피를 맛보는 각별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오늘 여정은 함상공원을 출발해 방조제를 건너 시계방향으로 호반을 돌아오는 약 37km 코스다. 언덕은 거의 없는 99% 평탄로다.

방조제의 가장 높은 지점은 보행로를 겸해서 안전하게 라이딩 할 수 있으나 도로를 오가는 차량 소음으로 안락하지는 않다. 방조제 북으로는 아산만 저편으로 서해대교와 아산만방조제가 아득하고, 남으로는 규모가 가늠이 가지 않는 삽교호가 내내 광활하다.

길이 3,360m의 장대한 직선인 삽교천방조제. 오른쪽에는 왕복 4차로의 34번 국도가 지난다. 사진의 왼쪽은 아산만

둑길의 낭만

조용연 편집위원이 전국의 강둑길을 답사하고 본지에 장기간에 걸쳐 연재했듯이(한국의 강둑길, 2013년 5월호 ~ 2019년 1월호), 강이든 호수든 물길 옆을 따라가는 둑길은 매혹이다. 원래 둑은 물을 차단하는 시설이어서 마치 성벽처럼 높게 쌓아 둑길은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고, 자동차와 인적이 드물어 언제나 한산하다.

삽교호 외곽을 도는 둑길은 들판과 호수의 접점을 이뤄 공간적 개방감이 한층 더하다. 3km가 넘는 완벽한 직선의 방조제를 지나 동쪽 호반으로 나서면 비로소 조용한 둑길이 시작된다. 길은 시멘트로 말끔히 포장되어 있어 바퀴에 흙 묻을 일도 별로 없다.

둑길마저 거의 직선이고, 들판은 바둑판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직은 농한기인데 간혹 둑길에 서 있는 차량은 낚시꾼이 타고 온 것이다. 차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장기간 유숙하면서 지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강태공은 한 자리에 멈춰 물고기와 세월을 낚는다면 우리는 길 따라 공간을 이동하며 풍경을 낚으니 시공을 만끽하는 처지는 비슷하다. 다만 작년에 남양호를 일주하다 심장마비로 숨진 낚시꾼을 본 적이 있는 차백성 편집위원과 나는 낚시꾼을 볼 때마다 당시의 기억과 괜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인주 장어촌거리

출발지인 함상공원 주변에는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지천이지만 일부러 점심을 미루고 참은 것은 여기, 인주 장어촌거리에서 장어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호반에서 1km 정도 들어가야 하지만 들판과 호수를 바라보며 장어를 맛본다는 기대감에 그 정도는 달가운 수고다.

과연 장어는 진미였고 가격도 착했으며 서비스도 훌륭했다. 뜬금없이 이곳에 장어촌이 형성된 것은 인근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인주산업단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산 인주는 일설에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인 비류가 나라를 세운 미추홀로 비정하기도 한다. 인천을 미추홀로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인천을 거쳐 더 남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삽교천 일원에는 고대의 유적이 적지 않아 상당한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다시 호반길을 따라가다 선인대교를 통해 곡교천을 건넌다. 곡교천 바로 위쪽에는 서해선 복선전철이 한창 공사중이다. 내년말 화성 송산에서 홍성까지 90km의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이 지역도 수도권 전철망에 포함되어 일대 변혁을 맞을 것이다.
                
삽교천 본류는 상류 방면으로 한참을 더 내려가서 선우대교를 거쳐야 건너갈 수 있다. 선우대교 직전의 궁평리에 있는 한 교회 마당에서 잠시 쉬어 가는데 교회당은 물론 바로 옆의 사택도 인적이 없다. 팬데믹의 직격탄은 신조차 막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섭리의 실현을 위한 방편인가.

호중도인 솟벌섬 앞쪽에 새카맣게 호수면을 메우고 있는 가창오리 떼

가창오리 떼의 오만

삽교천을 건너는 선우대교는 당진 방면으로 쭉 뻗은 내리막을 이뤄 간만에 중력 질주를 즐긴다. 이제 다시 당진 땅이다. 삽교천 서안의 당진 일대는 오페르트 도굴사건에서 보듯 일찍부터 해외와의 접촉이 있어서인지 천주교 성지가 많다. 이 땅 최초의 신부 김대건의 생가(솔뫼성지)도 들판 저편에 있다.
 
이제 삽교호 서안을 따라가는 둑길은 북향이다. 근 10km를 더 가야하는데 함상공원의 대관람차가 아스라이 보인다. 서해선 전철이 지나는 철교공사 구간을 지나면 예당평야의 한가운데 들어와 사방으로 광활하다.

삽교호 중간에 마치 배처럼 떠있는 솟벌섬이 가까워지면 호수면에 깨알처럼 가득한 점들이 무수히 보인다. 수십만 마리는 될 것 같은 엄청난 가창오리 떼다. 호반에 조성된 ‘소들쉼터’에서 물가로 접근해도 새 떼는 꿈쩍도 않는다. 겁 많고 예민한 새는 사람이 조금만 접근해도 푸드득 날아가기 마련인데 인간에 익숙한 가축처럼 태연자약이다. ‘소들’(‘솟벌’도 소들의 이칭)은 소머리 모양의 돌 두 개가 솟아올랐다 가라앉아 넓은 들이 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풍요로울 풍(豊) 자를 새긴 소 조형물에 앉은 일행의 웃음마저 풍요롭다.

하늘을 향해 우뚝한 ‘삽교천유역농업개발기념탑’. 한 시대의 대단원을 기억하는 기념비가 되었다.

소들쉼터의 조형물에 앉아 담소하는 일행. 너른 평야와 광활한 호수 그리고 우직한 소를 합치면 그냥 ‘풍요’다.

삽다리는 어디에

삽교호와 삽교천의 유래가 된 ‘삽교(揷橋)’는 정말 특이한 지명이다. 발음도 뜻도 기이한 ‘삽’자가 지명에 들어간 곳은 달리 없을 것이다. 삽교천 상류에 자리한 이 작은 소읍은 마을 옆 하천을 지나는 ‘삽다리’가 있어서 삽교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삽교를 소재로 한 유행가의 영향이 크고 주민들도 삽다리가 어디 있었는지 잘 모른다. 옛날 읍지에 나오는 사읍천(沙邑川)의 ‘사읍’이 ‘삽’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희귀한 ‘삽’자를 이름에 넣은 ‘삽다리’ 혹은 ‘삽교’는, 들어봐도 발음을 해도 촌스러움이 뚝뚝 묻어나고 무한 정겹다.

함상공원이 얼마 남지 않은 운정양수장을 지나면 야구장과 잔디밭, 호반 산책로가 조성된 삽교호 호수공원이 나온다. 큰 규모지만 인적이 없어 황량하다. 이제 34번 국도가 지나는 삽교대교 아래만 통과하면 출발지인 함상공원이다.

일주를 끝내고 마지막 의례가 남았다. 함상공원 옆에 하늘높이 솟은 ‘삽교천유역농업개발기념탑’을 돌아본다. 기념비의 글씨는 최규하 대통령이 쓴 것이다. 기단에는 대형 무궁화가 새겨지고, 하늘을 겨냥한 포신 같은 거탑은 40년 세월에 해묵었지만 한 시대의 대단원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우뚝하다. 이 탑뿐 아니라 삽교호 자체가 그러하다. 곡창의 젖줄이되 알아주는 이 없고 찾는 이도 별로 없는 그런 망각의 호수로서.

Tip

함상공원에는 널찍한 무료주차장이 있고, 코스는 전체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로드바이크도 주행이 어렵지 않다. 함상공원 일원에 조개구이와 생선회 식당이 다수 있다. 인주 장어촌거리는 삽교호 동단에서 1km 들어가야 하며, 초입의 숲속장어구이(041-543-2524)를 추천한다. 호수와 들판 조망이 좋고 시설이 깨끗하며 가격도 싼 편이다(한마리 3만원).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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