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 인도 잔스카르 자전거여행기 下] 우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잔스카르의 위대함을 보여주었으니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 2017.03.24 10:54
파둠 거쳐 카르길까지 잔스카르 마지막 여정
잔스카르에서의 날들은 공허한 것이며 동시에 현실적이며, 때로 환상 같은 꿈속이었다. 신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강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신묘하게 굽이친 산세가 숨을 고르는 곳에 안착한 안무(Anmu)마을은 우리같이 지친 여행객을 다독이기에 충분했다. 다바(여행자 휴게소)의 여자 주인은 어릴 적 시골 어머니처럼 음식 솜씨가 좋은데다가 매우 따뜻하고 다정해서 만족했다.
어린 아이는 이리저리 나비를 좇고 주인은 오랜만에 온 손님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녁을 먹자 지금까지 겪었던 고생이 거품처럼 가라앉았다. 낮고 조용한 소리로 다가오는 잔스카르의 노래에 묻혀 깊은 잠 속으로 떨어졌다.
다음날, 어려운 길을 다 통과하였기에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파둠(Padum)으로 출발했다. 안무에서 파둠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대충 길이 닦여 있었다. 강 낮은 쪽으로 자동차 길이 있고 트레커들이 지나가는 길은 높은 곳에 있었다.
바르단 사원은 학이 큰 날개를 펼친 듯 협곡으로부터 빠져나온 산맥이 좌우로 벌어지는 곳, 가장 높은 언덕에 있었다. 문설주를 지난 바람은 마니차(불경을 새겨 넣은 경통)에 머물렀고, 지붕에 매달려 떠는 타르초는 인간의 고통을 지고 고행하는 수행자와 같았다.
늦은 오후에 파둠에 도착해 호텔에 여장을 풀자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덮쳤다. 힘줄이 느슨해지고 지나온 잔스카르를 찬미하는 노래가 경을 염송하듯 저절로 나오니, 밤새 나는 열병을 앓았다. 놀라 벌떡 일어나보니 김시우, 조성원 대원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두 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트레커들조차 걷기 힘든 위험한 길을 자전거로 이동하는 고통은 컸고, 부족한 식사와 고소에 의한 두통으로 지쳐 있었다.
파둠에서 카르길로 가는 길, 예상했던 것과 달리 처음 몇 km를 제외하고 비포장도로의 연속이었다. 어려운 구간을 통과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느슨해지며 우리는 많이 달리지 못했다. 결국 펜지라(4,300m)를 30km 남기고 마지막 마을인 악소나우(Aksnow)에서 묵기로 했다. 다바가 있으려니 했는데 그냥 마을일 뿐이었다.
현지인 집에서 보낸 감동적인 하룻밤
도로작업을 감독하는 사람에게 민박집을 소개받아 들어가 보니 환경이 보통 열악한 것이 아니었다. 김시우, 조성원 대원은 결국 민박을 포기했다. 하지만 주민과의 약속이니 나만 그 집에서 머물기로 하고 두 사람은 큰길가에서 야영을 했다. 사실 다바가 아닌 농가에서 자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날 밤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열악했지만 라다크인들이 가정을 이루며 사는 방식이 옛날 못살던 우리나라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부엌 겸 거실인 방에서 그 집의 식구들과 함께 잠을 잔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내게 정성을 다했다. 차를 내오고 음식을 준비하며, 자신들의 집안 얘기를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만약 우리 일행 전부가 이렇게 열악한 집에서 머물 수 없다며 되돌아갔다면 집주인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창문 밖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이 이불을 밀치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고 있노라니 나는 진실로 나그네였다.
저녁 9시, 가족들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종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머리맡에서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강아지가 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덕분에 가족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잠이 오지 않아 명상을 하는 행운까지 누렸다.
날이 밝자 나는 아침식사를 할 새도 없이 차 한 잔만 마신 후 문을 나섰다. 눈동자가 설산의 영양을 닮은 듯 유난히 검은색으로 빛나는 큰딸이 내 손에 인도 라면 두 봉지를 꼭 쥐어줬다. 나는 사양했지만 진심으로 건네니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자신의 집에서 난생 처음 하룻밤을 보낸 나그네를 그 아이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가족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른 시간이라 어둑했지만 마을이 뵈지 않는 언덕 밑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가족들은 집 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이른 오후에 펜지라(‘라’는 고개를 뜻함)에 도착했다. 사방의 풍광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랑룽빙하는 산 정상에서 큰 강처럼 계곡으로 흘러내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펜지라는 싱골라에서 출발한 잔스카르협곡이 멈추고, 수르(Suru)계곡으로 바통을 넘겨주는 고개이다.
수르계곡의 산줄기는 눈 덮인 능선 부근까지 초록색 초지가 있어, 거친 황무지인 잔스카르계곡과 확연히 달랐다. 고개 하나 사이로 확연히 풍광이 변하는 것이 놀라웠다. 랭둠(Rangdum)까지는 계속 내리막이었다. 랭둠은 우리가 만난 마지막 라다크인 마을이었다.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설산, 넓은 초원,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 작은 언덕에 우뚝 솟은 랭둠 곰파(사원)가 마을의 특성을 말해 주고 있었다.
랭둠의 다바는 가정집이었는데 라다크의 전통을 보전한 아담한 집이었다. 랭둠은 어릴 적 고향마을 같았다가 때로 사바세계와 동떨어진 세상 같기도 했으며, 어디서 종소리라도 들리면 하늘이 더 높아질 것 같은 신비로운 마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여인들이 나와 송아지를 묶어놓고 소젖을 짜는 등 분주했다.
얼마를 달리니 잔스카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인 쿤(Kun·7,087m)과 눈(Nun·7,135m)이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마이산을 보는 것 같았다. 펜지라에서 발원한 수르강에 눈과 쿤에서 쏟아지는 큰물이 합쳐졌다. 다시 북쪽 히말라야에서 녹아내린 물을 합해 인더스와 더해진다. 그 힘차고 평화로운 모습은 멀리서 봐도 장관이었다.
초지는 풍성하고 강물의 유속은 빠르지 않으며, 경작지에는 막 여물기 시작한 보리와 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길은 계속 굵은 자갈이 깔린 비포장이었다. 조금만 빨리 달려도 짐받이에 고정시킨 페니어가 이탈하거나 짐받이 고정나사가 풀렸다. 이곳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이런 고장에 대비해야 하며, 특히 파손되기 쉬운 부품들은 반드시 여분을 준비해야 한다.
인생은 각자가 짜는 천, 무늬는 자신의 몫
카르길에 근접할수록 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상점도 자주 나타났으며 덕분에 과자나 음료수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제 라다크인들은 거의 볼 수 없고 잠무나 카슈미르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사는 무슬림들이 대부분이었다.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이 멀지 않아 군부대도 자주 보였다.
수르강의 우렁찬 물소리가 흐릿해질 정도로 높은 고개에 오르자 멀리 백양목으로 가득 찬 페니카르마을이 보였다. 이 마을부터 아스팔트길이 시작되었는데 카르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페니카르에서 마지막으로 검문을 받았다. 만약을 위해 휘발유와 약간의 감자를 구입한 후 건장한 청년 같은 설산이 보이는 페니카르의 레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묵었다.
참 오랜만에 편안한 잠자리를 가졌다. 가을이 가까이 왔는지 밤에는 간간이 풀벌레 소리도 들렸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면서 카르길 이후 스리나가르까지 어떤 방법으로 이동하고, 스리나가르에서 델리까지 가는 비행기 표는 언제 어디서 구입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카르길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계속 내리막 포장도로였기에 빠른 속도로 원 없이 달렸다. 비록 각자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달리는 내내 여행의 마지막에 느낄 수 있는 환희와 성취감을 만끽했다. 그것은 싱골라 정상에서 타르초와 하늘을 향해 안전을 기원한 우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리는 여행의 종착지인 카르길에 도착했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무사히 잔스카르와 수르계곡을 통과한 걸 자축했다. 뜨거운 빛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 대로변은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카르길은 레(Leh)와 스리나가르(Srinagar) 중간에 위치한 제법 큰 도시로 거주민 대부분이 무슬림들이며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 늘 지울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낸다. 신께서 잔스카르의 길을 열어 선뜻 우리에게 그 위대함을 보여 주신 것은, 분명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는 뜻일 것이다. 이제 그것을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여행 내내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김시우 대원과 조성원 대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잔스카르의 훌륭하고 멋진 기억들만 간직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은 각자가 짜는 천이지만, 무늬를 어떻게 새기느냐는 자신의 몫이다.<연재 끝>
tip
잔스카르 자전거 여행 정보
잔스카르를 트레킹이 아닌 자전거로 통과하는 것은 워낙 힘들어 추천하지 않는다. 단지 모험을 즐기고 뭔가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히말라야나 파미르고원처럼 고도가 높은 지역을 자전거로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동행해야 한다. 특히 야영 능력과 취사 능력이 있어야 하며, 자전거를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고 어지간한 고장은 고칠 수 있어야 한다.
1. 인도비자를 받는다. 여행에 임박해서 받지 말고 미리 받도록 한다. 직접 인도대사관에 가서 받을 수도 있지만 비자 대행사를 통해 받으면 편리하다. 수수료는 대행사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2만 원 정도이다.
2. 여행 일정을 정한 후 비행기 표를 예매한다. 두서너 달 전에 예약할 경우 좀더 유리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으며 경유하는 비행기보다는 직항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경유에 의한 짐의 훼손도 줄일 수 있으며 무엇보다 피로하지 않다.
3. 대개 델리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낮보다는 밤이 되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지 말고 대기실 등에서 아침까지 눈을 부친다. 델리 시내로 들어가서 호텔을 잡고 하루를 잘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다시 짐을 꾸려 출발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
4.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델리 시내에 있는 카슈미르 게이트 지하철역으로 간다. 바로 역에서 가까운 곳에 카슈미르 게이트 시외버스 정거장이 있는데 기사에게 ‘Kashmir Gate Bus Station’으로 가자고 하면 알아듣는다. 정거장 안으로 들어가서 마날리(Manali)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한다. 완행은 아침 7시부터 출발하며, 좀더 안락한 직행 볼보버스는 저녁 7시 이후에 출발한다. 완행은 경우에 따라서 다르지만 16시간 이상 걸리며 직행 볼보버스는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어떤 여행자들은 비행기로 바로 레로 가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소 적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5. 마날리에 도착하면 하루를 묵으며 자전거를 조립하고 짐을 정리한다. 비상식량 등 필요한 것들을 구입 후 적당한 시간에 출발한다.
6. 잔스카르계곡과 수르계곡을 통과해 카르길에 도착하면 카르길 시내의 믿을 만한 여행사를 찾아간다. 스리나가르나 레 중 델리 행 비행기를 탈 종점을 결정한 후 델리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한다. 비행기 표 가격은 보통 3,000~5,000루피 정도이다. 카르길에서 스리나가르나 레로 가는 시간은 4일 정도로 넉넉하게 잡아서 표를 예약한다. 스리나가르나 레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를 분해하여 패킹한다. 다만 현재 스리나가르는 심각한 분쟁지역으로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따라서 카르길에서 레로 가는 길을 추천한다. 레에 도착하면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7. 델리로 와서 숙소를 정한 후 예정 날짜에 귀국한다.
8. 여행 떠나기 전 짐받이를 설치한 자전거와 페니어, 그리고 야영장비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특히 이 지역은 일반 도로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더불어 잔스카르 전체에 대한 지형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참고로 인도편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을 가지고 가면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문의 바람.
이메일 triplemankr@hanmail.net. 010-3277-9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