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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자전거 (3) 가훈

글·사진=반창호 자전거마니아 | 2016.05.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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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아들과 함께 세 번째 라이딩을 했다. 광진구 집에서 출발, 한강 북단 자전거길을 달려 신행주대교를 건너고, 여의도를 거쳐 한강 남단 자전거길을 지나 잠수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68km 코스다. 바로 전날 양평에서 서울까지 51km, 사실상 첫 장거리를 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 만만찮은 거리였지만 힘들다고 칭얼대지 않았다. '내가 해냈다!' 싶었는지 한껏 고양되어 잠들기 전 "아빠, 내일은 한강 풀코스 도전이야! 약속해!"라고 외쳤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달라진다. 이불 속에서 자꾸만 뭉기적거렸다. 다리는 뻐근하고, 집에서 종일 뒹굴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내가 짧게 말했다. "아빠랑 수학 공부할래? 자전거 탈래? 네가 선택해!" 아들은 벌떡 일어났다.
 
3년 10개월 동안 아들과 함께 8,086km 자전거여행을 하게 된 이유는 사실 '아빠의 의무'를 게을리 한 내 탓이 가장 크다. 주말이면 아빠가 아이 공부도 돕고 독려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어린이가 어디 있겠나. 그래도 공부는 시켜야 한다. 좋은 대학교에 가야 연봉이 높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 숙제하기 싫어할 때는 이렇게 설득했다. "세상엔 공짜가 없고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네가 돈도 안 내고 마트 주인에게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면 되겠니? 의무를 다해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숙제해야 놀 수 있다." 참 합리적인 아빠의 설득이다. 숙제를 안 할 수 없을 거 같다. 아들 왈, "아빠 말이 옳아, 말로만."
 

공항철도가 지나가는 마곡철교 근처 한강 북단 자전거길을 아들과 함께 달렸다.

시험공부를 힘들어할 때는 이렇게 설득했다. "너, 과학은 좋아하고 잘 하잖니. 뉴턴의 제1법칙이 뭐야? 관성의 법칙이야. 멈춰 있는 물건은 계속 멈춰 있고 싶어 하고, 움직이는 물건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한다. 멈춰 있는 물건을 움직이려면 정지최대압력이 작용하고 있어서 힘이 많이 든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속 움직이려는 속성 때문에 네 힘으로 트럭도 밀 수 있다. 모든 일은 정지최대압력이 작용하는 처음이 힘들 뿐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쉬워진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곧 쉬워지고 재미를 느낀다. 세상에 공부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참 과학적인 아빠의 설득이다. 공부가 곧 쉬워질 거 같다. 아들 왈, "아빠, 정말 말 잘한다. 말싸움으론 아빠를 이길 수 없어."
 
말(言) 잘하긴 개뿔, 물가에 끌고 가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는 게 말(馬)이다. 짐승도 그러한데 아무리 자식이래도 인간을 어찌 부모 마음대로 설계하고 강제할 수 있겠나.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동물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아들 공부시키기가 힘들어 틈나는 주말마다 아들과 자전거여행을 떠났던 아빠는 자기합리화의 '구름'을 찾는다. "부모가 자식을 점토처럼 반죽해낼 수 있다는 이론은 부모들에게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양육 체제를 강요해왔다. 그것은 균형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들의 힘겨운 선택을 왜곡시키고, 바라는 대로 성장해주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통을 배가시켜왔다." (스티븐 핑커, 빈 서판 : 인간의 본성은 타고나는가, 사이언스북스, 2004, p13)
 
자기합리화의 '파리떼'는 더욱 시끄러워진다. "사실 아이가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자녀들의 특성을 미리 지정하기를 원하는가? (중략) 사람들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고 부모가 유전공학을 통해 자식을 설계할 수 있다는 미심쩍은 약속을 끔찍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가 양육을 통해 자식을 설계할 수 있다는 환상과 얼마나 다른가? 현실적인 부모라면 오히려 시름을 덜 수 있다. 아이를 자극하고 사회화하고 아이의 성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 p698)

행주산성 원조국수집에서 세숫대야에 담은 듯 어마어마한 양을 보고 아들은 한참 동안 황당해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빠와 아들은 수학책을 덮고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흐린 가을날,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다. 한강 다리 숫자를 세면서 한강 북단 자전거길을 달려 행주산성까지 왔다. 그 유명한 <원조국수집>에서 3,500원(현재는 500원 올랐음)짜리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한 그릇씩 시켰다. 세숫대야에 담은 듯 어마어마한 양을 보고 아들은 한참 동안 황당해했다. "아빠, 이렇게 팔아서 남아? 재료값만 5만원 들겠네." 열심히 먹기 시작했지만, 반도 못 먹고 질리는 듯했다. "아빠, 그만 먹으면 안 될까?" "안 돼! 우리집 가훈이 뭐야?" "먹을 땐 정신력으로, 배 터질 때까지!" "그래, 그렇게 해!"

아들은 반도 못 먹고, \

일곱 명 조카 중에서 내가 특히 예뻐한 우리 집안의 장손, 즉 형님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입이 짧고 먹는 양이 적었다. 그래서 장손에게 뭔가를 사 먹일 때마다 농담 삼아 가훈 얘기를 꺼냈다. 사촌형을 닮았는지 아들도 그랬다. 온갖 종류의 음식이 다 있는 백화점 음식 코너를 몇 바퀴 돌아도 메뉴를 선택하지 못했다. 요즘 애들과 전혀 다르게 피자와 햄버거는 안 먹고, 아빠를 닮아서인지 곰치탕 같은 얼큰하고 깔끔한 국물을 좋아했다. 먹는 양도 적은 아들에게 꺼내들었던 가훈 카드는 한동안 효과를 발휘했다.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고향집에서 어느 제삿날, 마침 휴일이라 아들도 함께 참석했는데 젯밥을 내가 너무 맛있게 먹자 애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잘 밤에 많이 먹지 마라.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게 과식하는 사람이다." 그때 이후 아들은 내가 가훈 얘기를 꺼내면 바로 맞받아쳤다. "아빠, 집안 창피하니까 그만해!" 우리집 가훈은 그렇게 사망선고를 받았다.
 
신행주대교를 건너 한강 남단 자전거길을 달렸다. 신이 난 아들은 앞서 달리던 청년 라이더를 따라붙더니 기어코 추월하고 만다. 청년은 "잉, 꼬마에게 따이다니!" 하듯이 아들을 다시 추월했고, 아들이 다시 추월하고 추월당하고, 몇 번 그 과정이 반복됐는데 사람들이 많아지고 속도가 위험해졌다 싶어서 내가 "정지!"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쉴 때는 '곤충' 마니아인 아들의 강의를 10분 넘게 들어야 했다. 개미 싸움 붙이기, 개미 잠시 기절시키기 등등. 아들놈은 '벌레'를 싫어하는 아빠 취향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도 '톨레랑스(tolerance, 관용)'를 가르쳐야 한다. 자기 취향을 아들에게 강요하는 아빠가 훨씬 더 많긴 하지만 자기 취향을 아빠에게 강요하는 아들놈도 나쁘긴 마찬가지다.

여의도 물빛광장은 아들에게 훌륭한 자전거 놀이터였다.

아들은 여의도 물빛광장이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애들 물놀이하라고 만들어 놓은 듯한데 훌륭한 자전거 놀이터, 더 훌륭한 자전거 세차장이었다. 물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올라오고, 신발과 하의와 상의가 다 젖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그만 가자고 해도 "아빠, 10분만!"을 외치며 거의 한 시간 동안을 놀았다. 자전거 물놀이를 마치고 남은 건 다 젖은 옷과 깨끗이 세차된 자전거였다. 그 와중에 물에 젖지 않도록 점퍼 하나를 숨겨둔 걸로 보아 아빠로서 자격미달은 아닌 듯하다. 반포대교 남단 세빛둥둥섬의 화려한 야간 조명을 구경하고, 잠수교를 건너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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