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즐기는 ‘슬로시티’ 증도의 이른 봄
“봄꽃이요? 신안의 섬은 바다 때문에 추워서 꽃이 좀 늦어요.”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안양천 둑 위에 도열한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300km 남쪽 신안군 증도의 벚나무 가로수는 이제 막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를 기대했던 여행객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육지의 벌판이 꽃으로 물드는 4월이지만 섬을 찾는 봄의 발길은 너무도 무뎠다.
“이제 증도 들어갈 때 입장료 안 받네요?”
몇 년 전 증도에 온 적이 있는 백은식씨가 놀란 눈치다. 알고보니 2011년부터 증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받던 입장료가 지난해 전격 폐지됐다고 한다. 인건비 비중이 워낙 큰 데다 관광객과의 마찰이 잦아 득보다 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큰돈은 아니라 해도 입장료 징수는 증도 여행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였다. 다리 하나를 건널 뿐인데 길을 가로막고 돈을 받는 것은 기분 문제였기 때문이다. 입장료가 없어지며 이제 좀더 많은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증도를 찾을 수 있게 됐다.
“먼저 증도의 대표적인 명소인 우전해수욕장으로 가겠습니다.”
목포에 사는 섬 자전거 투어 전문가 임연택씨가 추천한 코스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증도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우전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인상적인 곳이다. 길이 4km, 폭 100m 규모의 긴 해변으로 물이 맑고 솔숲이 좋아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있다. 게다가 해변 바로 앞에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어 풍광 또한 수려하다.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우전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 투어를 위한 장비를 챙겼다. 증도의 넓이는 약 40㎢로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주요 도로를 달리면 하루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조금 여유 있게 구석구석 돌아보기 위해 우전해수욕장에서 야영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증도 최고의 명소 짱뚱어다리
우전해변은 증도 내에서도 편의시설이 가장 잘 갖춰진 야영지가 있다. 넓은 주차장 옆의 잔디밭에 텐트를 칠 만한 장소가 많고 평상도 곳곳에 놓여 있다. 사철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바로 앞에 있어서 편리하게 캠핑이 가능한 장소다. 또한 우전해수욕장 북쪽에는 증도의 명물 ‘짱뚱어다리’가 있다. 증도면 소재지 인근 솔무등 공원에서 갯벌을 가로질러 우전해변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나무다리로 길이가 470m에 달한다. 썰물 때는 짱뚱어와 농게, 칠게 등 갯벌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해수면 위를 걷는 듯한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짱뚱어다리부터 건너면서 증도 투어를 시작하죠.”
임연택씨를 따라 자전거를 끌고 계단을 올라 긴 나무다리 위에 섰다. 마침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발아래 흙탕물이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든 아치형 다리를 지나 조망대에서 잠시 머무르며 바다를 쳐다봤다. 다리 위에 서 있으니 냉기를 머금은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바다는 아직도 봄이 아니었다. 마침 해안을 타고 밀려드는 짙은 해무까지 더해지며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짱뚱어다리를 건넌 다음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돌렸다. 뼛속까지 파고 든 바다의 냉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태평염전 서쪽을 거쳐 포장도로를 타고 화도를 향해 속도를 냈다. 증도 남쪽에 딸린 작은 섬인 화도는 2007년 방영된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촬영한 장소다. 한적한 섬마을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도 촬영 세트의 일부가 남아 있다.
대초리 덕정마을 입구에서 갈라지는 좁은 마을길로 접어들어 화도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앞 바닷가로 넓은 포장도로를 내고 있는데 아직 미완성이라 통행이 불가능하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은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새파란 잎사귀가 가득한 양파밭을 지나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니 바다 건너 화도가 보였다.
증도에서 화도로 넘어가려면 가려면 썰물 때 갯벌 위에 놓인 노두길을 타야 한다. 하지만 마침 그곳에 도착하니 만조 시간이었다. 넘실거리는 바다 건너 외롭게 떠 있는 화도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바닷가 공터에 자리를 펴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끓여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화도를 포기하고 대초리로 돌아 나와 섬 동쪽의 소금박물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염전인 태평염전에서 운영하는 전시관이다. 예전에 소금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전시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곳을 증도의 핵심 탐방지로 꼽는 것은 주변에 소금 관련 볼거리와 체험거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찻길을 타고 이동해 소금박물관에 도착하니 길옆에 늘어선 전세버스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전국에서 몰려 든 관광객들이 박물관 주변에 가득했다. 카페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화장실을 이용한 뒤 가볍게 시설물을 돌아봤다. 사람이 너무 많아 오래 앉아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태평염전을 가로질러 가보죠.”
자전거를 타고 국내 최대 넓이라는 태평염전의 속살을 돌아보기로 했다. 소금박물관에서 시작해 염전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비포장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넓은 소금밭을 바라보며 조용히 페달을 돌렸다.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말도 아꼈다. 연이어 나타나는 소금창고와 숙소를 곁눈질로 구경하며 지나갔다. 태평염전을 지나가 보니 황야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방이 소금밭인 허허벌판을 달리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
태평염전 동서횡단 도로 3km를 빠져나와 면소재지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산길과 숲길을 타기 위해 에너지 보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식수를 보충하고 자전거 점검을 마친 뒤 서쪽 방축리 방면으로 이어진 도로를 탔다. 목적지는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였다.
신안해저유물은 1975년 증도면 방축리 도덕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중국도자기가 걸려 올라오면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이후 청자, 백자, 동전, 생활용품 등 2만8,000여 점에 달하는 해저유물이 1984년까지 발굴됐다. 이 신안해저유물 발굴은 동양문화사 연구에 길이 빛날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발굴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발굴해역이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됐다. 이를 기념해 증도 방축리 서쪽 끝의 바닷가 벼랑 위에 유물발굴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기념비 북쪽 바다에 유물이 발굴된 도덕섬이 자리하고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북쪽 해안
적당히 굽이치는 찻길을 따로 고도를 높이니 아기자기한 바다 풍광이 발아래 깔렸다. 대단도, 소단도, 내갈도, 외갈도 등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사이좋게 늘어선 모습이 보기 좋았다. 기념비 주차장에 닿기 직전 소단도로 이어진 나무다리가 보였다. 작은 섬에 세운 거대한 배 모양의 건물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개인 소유의 건물로 전시관과 카페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 주변도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별다른 볼거리는 없지만 증도를 대표하는 명소로 꼽기 때문이다. 기념비를 지나 조금 더 가면 2차선 포장도로는 끝난다. 여기서부터는 좁은 콘크리트포장도로가 북쪽 해안을 타고 이어졌다. 전봇대도 보이지 않는 호젓하고 아늑한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재미가 남다른 구간이었다.
해저유물이 발견된 도덕섬 바로 앞의 하트 해변을 지나 산자락을 돌아나가니 백사장이 멋진 해변을 끼고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여기서 길은 두 가닥으로 갈렸다. 계속 해안을 따르는 길은 산을 넘어 증도대교로 이어졌다. 다시 면소재지로 가려면 우회전하면 된다.
“한반도 해송 숲에서 석양을 보려면 지금 우전해수욕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북쪽 해안 산길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도로를 따라 다시 해변으로 이동했다. 해송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통과해 2km 정도 신나게 달리다 보니 신안갯벌센터, 슬로시티센터가 나타났다. 화장실과 편의점, 식당 등 편의시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지도터미널에서 다니는 버스가 이곳까지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엘도라도 리조트가 조성되어 있었다. 소나무 숲과 바다 풍광이 잘 어우러진 멋진 장소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석양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다 멀리 먹구름 속으로 해가 들어가며 그대로 어두워진 것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캠프사이트로 돌아가야 했다.
증도의 명소
신안갯벌센터·슬로시티센터
갯벌생태전시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학습장, 영상실, 갯벌전망대 등이 있다. 2층에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증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증도관과 국제관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61-275-8400.
태평염전(등록문화재 제360호)
여의도 면적의 2배 규모로 단일 염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약 6%를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구제와 국내 소금 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전증도와 후증도를 둑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 갯벌에 조성한 염전이다.
우전해변 한반도 해송숲
1960년대 증도 사람들이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 방사림. 바닷가 모래밭에 울창한 해송(곰솔) 숲을 조성했는데, 그 군락지의 모습이 마치 한반도 지형을 빼닮아 한반도 해송숲이라 불리게 됐다.
증도 모실길
한 해 100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있는 도보여행지. 증도 모실길(42.7km)은 모두 5개 코스다.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0km), 송원 시대 보물선 발견지와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발자취길(7km), 솔향기 그윽한 천년의 숲길(4.6km), 갯벌공원길(10.3km), 천일염길(10.8km) 등이 있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신안 암태도 출신인 문준경(1891~1950) 전도사는 1931년 서울의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다. 1933년 임자도의 진리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신안군 21개 섬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한국전쟁때 좌익세력에 의해 순교했다.
INFORMATION
증도 트레킹
천사의 섬 전망대 상정봉 오르기
증도 사람들은 증도면사무소 뒷산을 주산(主山)이라 꼽는다. 산봉우리의 이름은 상정봉(上正峯·127.7m) 또는 산정봉이라 부른다. 증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풍수지리학상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산 정상에 증도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있다. 길이 좋아 잠시 시간을 내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상정봉 산행들머리는 면사무소 옆에서 시작된다.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호국용사충혼기념탑을 지나고 나무와 흙으로 만든 계단산길이 시작된다. 이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중동리마을과 멀리 태평염전이 내려다보인다. 잠시 뒤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만나고 10여 분 더 오르면 장흥댐 상수원 저장시설이 나타난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5분여 오르면 나오는 널찍한 헬리포트에 전망대와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남쪽을 향해 시야가 터지는 전망대에 서면 갯벌 위에 놓인 짱뚱어다리 너머로 한반도 모습의 해송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왼쪽으로는 태평염전의 광활한 소금밭이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무안의 해제반도가 조망되고, 남쪽으로 멀리 자은도 두봉산과 암태도 승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비금도가 보이고, 북쪽으로 임자도 대둔산도 눈에 든다. 상정봉 전망대는 신안군 ‘천사의 섬’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은 짧고 평탄하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임자도와 사옥도, 지도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다도해가 펼쳐진다.
잠시 후 능선 왼쪽 위에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너럭바위에 가장자리에 기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이른 새벽 상정봉을 오르며 기도하던 ‘기도바위’라고 한다. 남쪽 다도해 조망이 좋은 장소다. 기도바위에서 5분쯤 걸으면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상정봉 정상이다. 길인 정상에서 두 가닥으로 갈린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방축리 염산저수지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20여 분 내려가면 해안으로 내려선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방면으로 진행하다 함평JC에서 무안광주고속도로로 빠져나와 ‘북무안, 무안공항’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후 북무안IC에서 빠져나와 해제면을 거쳐 증도로 진입한다(4시간 30분 소요).
서울 센트럴시티 ↔ 지도 1일 2회 운행(4시간 30분 소요), 광주광천버스터미널에서 무안, 해제, 지도 경유 증도행 버스가 운행한다(1시간 50분 소요).
목포버스터미널에서 무안, 해제, 지도 경유 증도행 버스가 운행한다(1시간 50분 소요).
지도버스터미널에서 증도 순회버스(15분 소요)가 수시로 다닌다.
숙식(지역번호 061)
증도 최고의 휴양시설인 엘도라도 리조트(www.eldoradoresort.co.kr)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슬로시티 휴양지답게 증도 곳곳에 펜션이 산재해 있다. 증도 펜션과 민박은 홈페이지(www.j-minbak.com)를 참고하면 된다. 화장실과 샤워장, 식수대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우전해수욕장에서 캠핑이 가능하다.
면소재지 인근 증동리에 사철 이용 가능한 식당이 밀집해 있다. 이학식당(271-7800), 안성식당(271-7998), 갯마을식당(271-7528), 황궁짜장(275-0072) 등. 증동리에 농협하나로마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