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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탐사투어]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 탄생한 곳

바이크조선 | 2016.01.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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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 자전거투어_고치현 ① 일본 최후의 맑은 물, 웅장한 태평양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하지만 관광에 있어선 그 어느 나라보다 유독 우리에게 낯선 지역이 있다. 바로 시코쿠(四國)이다. 시코쿠는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의 주요 섬 중 제일 작은 섬이다. 세토내해와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시코쿠는 도쿠시마, 가가와, 에히메, 고치 등 4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고치(高知)와 에히메(愛媛) 현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탁 트인 태평양을 내내 볼 수 있는 아시즈리 해안도로

거리 : 약 30㎞
코스 : 가라쓰하마→쿠로시오라인→요코나미·쿠로시오라인→쿠로시오혼진→시만토강→아시즈리미사키→아시즈리·서니로드

시코쿠의 4개 현은 섬 중앙부의 동서로 뻗은 쓰루기산과 이시즈치산으로 갈린다. 이곳의 산들은 모두가 옛날부터 도(道)를 닦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인 고보(弘法) 대사의 족적을 따라 섬 전역에 1번부터 88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사찰을 걸어서 순례하는 길로 유명하다. 1400㎞에 달하는 이 순례길은 통칭 ‘오핸로(お遍路)’라고 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더불어 ‘동양의 산티아고’로 일컬어지는 ‘시코쿠 오핸로’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순례자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고치시내에 웅장하게 서 있는 고치성.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일본 전국의 12개 성 중 하나다

매혹의 시코쿠(四國)

시코쿠는 아직도 옛모습을 잃지 않고 잘 보존된 전통적인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고, 일본의 자연과 풍경을 다양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급류가 인상적인 요시노강의 오보케와 고보케, 조용하고 청명하게 흐르는 시만토강과 니요도강, 거친 파도가 절벽으로 밀려오는 태평양과 그와 반대로 온화하며 섬이 많은 아름다운 세토내해의 섬들. 거기에 옛 가옥이 펼쳐진 거리와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에 뛰어들어 현지인들과 만나 어울리고, 지역 음식을 맛보는 것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시코쿠로 가는 교통편은 항공편이 유일하다. 에히메의 마쓰야마공항과 가가와의 다카마쓰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다. 물론 다른 교통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배나 항공편으로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 오사카를 경유해 다시 배편과 버스, 신칸센을 이용해서 갈 수도 있지만 다소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인천을 출발해 가가와현의 다카마쓰공항이나 에히메현의 마쓰야마공항을 통해 시코쿠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도사견의 본향답게 토산품센터에는 도사견 인형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번 여행은 가가와현의 다카마쓰공항으로 들어가 고치현 일대의 해안도로와 시만토강을 둘러보고, 에히메현의 해안도로와 시마나미카이도를 거쳐 마쓰야마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5박6일간의 일정이었다.

자연의 보고, 고치현(高知県)

고치현은 태평양에 접해 있으며, 시코쿠 남쪽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토사국(土佐國)으로 불리었고, 험한 산맥으로 인해 세토내해 방면과는 교류가 적어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투견인 ‘도사견’도 이곳이 원조로, 그 이름도 ‘토사국’에서 유래했다. 태평양과 접해 있어 고온다습한 고치현은 오키나와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비가 가장 많다.

가쓰라하마공원의 언덕에 서 있는 일본 근대화의 주역,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

가쓰라하마는 류즈자키(.頭岬)와 류오자키(龍王岬) 사이에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고, 옛날부터 달구경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남쪽 전지역이 태평양에 접해 활모양을 한 고치현은 ‘일본 최후의 맑은 물’이라는 시만토강을 시작으로 2011년 9월에 세계 지오파크 인증을 받은 무로토와 아시즈리미사키, 카츠라하마 등 수많은 역사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산림율 또한 84%에 달해 일본 제일을 자랑한다. 해안지대인 만큼 풍부한 해산물과 특색 있는 음식들이 많다.

가쓰라하마공원에서 시작되는 14번과 23번 국도의 쿠로시오라인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달리는 장쾌한 해안길이다

‘고치’ 하면 뭐니뭐니해도 가쓰오타타키(かつおたたき)가 유명한데, 가다랑어를 짚불로 겉만 살짝 익혀서 먹는 회로 고치현이 원조이다.

가쓰오타타키에 유독 생마늘을 곁들여 먹는 고치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다혈질이고 정이 많다. 고치현 출신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板本龍馬)의 기개도 한몫을 하지만, 그보다는 양껏 먹고 즐기는 고치의 술 문화에 한 표를 던져 본다.

껑충한 야자수와 울창한 상록수림이 아열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요코나미·쿠로시오 라인

예의와 절제의 미덕을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예부터 고치 사람들은 술을 즐기고 삶을 즐길 줄 안다고 한다. 일례로 손 안에 천원이 쥐어졌다고 하자. 가가와 사람들은 천원을 저금하고, 에히메 사람들은 천원을 고스란히 쓰는데, 고치 사람들은 천원을 더 보태 술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고치현 사람들은 호탕하다.

고치에는 사카모토 료마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료마의 탄생지와 살던 곳, 료마가 모시던 성주인 야마모토 가의 고치성, 료마기념관, 료마가 태평양 너머 미국을 상상했던 가쓰라하마 해변 등이 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 인물의 한 사람이다.

해안절경을 자랑하는 요코나미·쿠로시오 라인에서

하급무사 출신으로 일본 근대화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 료마는 신분 구속이 많은 자신이 속한 토사번을 버리고 세상으로 탈출하여 서로 대립 관계에 있던 사쓰마번(가고시마)과 조슈번(야마구치)의 동맹, 그리고 막부와 번의 통일을 성사시킴으로써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름다운 해안도로, 요코나미·쿠로시오 라인본격적인 라이딩을 위해 고치시 남쪽 태평양과 접한 가쓰라하마(桂浜)를 찾았다. 가쓰라하마는 고치시 여행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고치시에서 자전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우라도 반도의 끝에 있다. 1591년 이 지역의 지배자였던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우라도성을 지어 한때는 이곳이 토사지역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쿠로시오혼진에서 가쓰오타타키를 만드는 체험을 했다

가쓰라하마는 류즈자키(竜頭岬)와 류오자키(龍王岬) 사이에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이 아름답게 펼쳐져 옛날부터 달구경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해안의 동쪽에는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이 바다를 향해 서 있고, 토사투견센터와 가쓰라하마수족관, 사카모토료마기념관 등이 있다. 멋진 해안 풍경에 비해 빠른 조류가 흘러 수영은 금지되어 있다.

겉맛 살짝 숯불에 그을려 먹음직스러운 가쓰오타타키

토사만 앞바다, 바로 태평양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이 요코나미·쿠로시오라인으로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명소다. 코스는 가쓰라하마 공원에서 우사초의 후쿠시마 마을까지 15㎞의 쿠로시오라인과 후쿠시마 마을에서 우라노우치 니시분 마을까지 19㎞의 요코나미·쿠로시오라인으로 구분된다.

쿠로시오라인은 국도 14번과 23번을 달리는 길로 태평양과 접한 토사만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아름다운 평지길로 라이딩하기에는 순탄한 편이다. 출발지에서 10㎞ 못미처 니요도강대교를 건너게 되는데, 서일본 최고봉 이시즈치산(1982m)에서 발원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니요도강(仁淀川)을 만나게 된다. 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니요도강은 특유의 초록색 물빛이 독특한데, 강바닥의 녹색편암 때문에 오묘한 비취색을 띤다고 한다.

산과 숲, 공기, 강물 모든 것이 투명할 정도로 청정한 시만토강을 따라 달리며

우사만의 하시다하마 마을에 이르러 커다란 고래 조각상을 지나면 우사초 후쿠시마 마을로, 왼쪽으로 우사대교가 보인다. 좌측의 47번 국도 이정표를 보고 우사대교를 건너야 요코나미쿠로시오라인이 시작된다.

코스는 약 19㎞로 우라노우치만 바다를 품은 채 기다랗게 동·서로 뻗은 땅이 태평양과 만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수없이 나타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는데, 눈 아래로는 웅대한 태평양을 접한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부드럽게 파도가 치면서 가늘고 긴 굴곡의 해안선과 깎아지른 듯 아찔함을 주는 해안선은 대자연의 힘과 역동성을 느끼게 해준다.

요코나미·쿠로시오 라인을 벗어나면 스사키시(須崎市)다. 스사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가토사초 쿠레항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쿠로시오혼진(黑潮本陣)은 가쓰오타타키 체험으로 유명하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온천도 즐길 수 있다.

시만토강에는 폭우가 내리면 물에 잠기는 침하교가 많다. 난간이 없이 단출한 것은 급류에 저항을 적게 주고 떠내려 오는 나무에 최대한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 최후의 청류, 시만토강(四万十川) 코스

전체 길이 196㎞의 시만토강은 이라즈산(1336m)에서 발원해 고치현 서남지역을 크게 사행하면서 시만토시(四万十市)를 통과해 태평양으로 흐르는, 시코쿠에서 가장 긴 강이다. 풍부한 수량으로 태평양으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은 물이 깨끗해서 ‘일본의 마지막 청류(淸流)’라고 불리고 있다. 강은 주요도시와 대형댐과 떨어져 있어 어업과 김 생산이 번창하고 있다. 기후현의 나가라강, 시즈오카현의 가키타강과 더불어 ‘일본 3대 청류’의 하나로 꼽히며, 빼어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민물고기의 천국으로 카누를 즐기거나 관광유람선을 타고 물놀이를 만끽할 수 있으며, 강변길을 따라 즐기는 자전거 여행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경사가 가파른 일본의 산들 사이로 흐르는 강은 길이가 짧고 물살이 빨라 대체로 물이 맑지만, 이 강의 청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196㎞를 흘러온 강물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하구에서 맑은 물에만 자라는 파래(아오노리, 靑海苔)가 생산될 정도다. 이는 시만토강이 얼마나 맑은지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증거가 된다. 강 하구의 나카무라(中村)에서 나는 아오노리가 일본에서 가장 맛이 좋고 생산량이 많은 것도 강의 청정도와 유관하다.

아시즈리전망대에서 바라본 아시즈리곶 등대. 높이 18m로 빛이 38㎞ 거리까지 비춘다

쿠보카와 역에서 라이딩을 시작하면 하류의 시만토시까지 약 90㎞의 거리다. 강줄기를 따라 하류쪽으로 라이딩을 하게 되니 오르막은 거의 없다. 길은 내내 강변을 따라 가는데 교통량이 적은 옛길과 새길이 있다. 옛길은 강줄기 모양대로 휘어져 있고, 새길은 산허리를 터널로 뚫고 가는 지름길이다. 옛길을 따라 달리면 당연히 거리는 더 늘어난다..중간 중간에 휴게소(미찌노에끼. 道の.)가 있어 식사나 음료를 사먹을 수 있다.

시만토강에는 높이가 낮고 난간이 없는 옛스런 다리가 많이 놓여 있는데, 지류를 포함해 47개의 침하교(沈下橋, 친카바시)가 있다. 이 다리는 여름철 장마나 폭우 때면 수위가 높아져 다리를 삼키고 만다. 난간이 없는 이유는 비가 오면 순식간에 강물이 불어나는데, 이때 떠내려가는 나무에 다리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다리 주변 산자락에 물이 차올랐던 흔적이 보인다. 옛날에는 이런 다리가 강 건너 마을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으리라.

우리나라의 섬진강과 많이 닮은 시만토강을 달리면서 감탄을 금하기 어려웠다. 유역인구가 적다고는 하지만 8개의 시정촌(市町村)을 흘러온 강가에 버려진 쓰레기가 단 하나도  없다.

88순례지에서 38번째 사찰인 곤고후쿠지

왼쪽으로 강, 오른쪽으로 산비탈과 마을을 끼고 달리는 좁은 도로변에는 은어낚시나 뱃놀이, 카누 등을 즐기는 관광객 상대 업소들이 여럿 보인다. 그러나 이런 업소들도 강을 더럽힌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질서 있고 청결했다. 한국의 경승지에 줄지어 늘어선 음식점, 카페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다음 날 유람선 투어가 있었는데 배에서 바라 본 시만토강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심 2~3m의 하류인데도 물밑의 자갈이 여울처럼 선명했다. 삼나무와 대나무숲이 투영된 물빛은 푸르다 못해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영롱했다.

시코쿠 최남단 아시즈리곶 코스

아시즈리미사키(足摺岬)는 고치현의 남서쪽 도사시미즈시(土佐.水市)의 곶으로 시코쿠지방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태평양으로 튀어나온 아시즈리미사키는 쿠로시오해류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닿는 곳이다.

아시즈리우와카이국립공원에 속한 이 지역은 아시즈리곶, 아시즈리곶 등대, 해식동굴인 하쿠잔동문, 독립된 작은 구릉으로 해식과 풍화로 인한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다쓰쿠시해안, 미노코시해안, 다쓰쿠시해중공원, 해중전망탑인 아시즈리해저관, 수족관인 아시즈리해양관, 곤고후쿠사 등의 명소가 있다. 워낙 남쪽에 위치해서 교통이 불편함에도 찾아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고치현 일정을 함께 하며 코스를 가이드해준 오카모토(왼쪽) 씨와 무치(오른쪽) 씨

아시즈리미사키 입구에는 이곳 토사 출신의 소년 ‘존 만지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존 만지로는 일본인으로서 첫 해외여행자라고 한다. 아시즈리곶의 끝 지점 절벽에 세워진 18m 높이의 등대는 일본에서 가장 큰 등대의 하나로 딱 트인 태평양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곳 인근에 시코쿠 88순례지의 제38번 사찰인 곤고후쿠지(金剛福寺)가 있는데, 이 절은 고치현 최대의 사찰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남국의 아열대 식물이 무성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케 보실 수 있습니다.

시코쿠 가는 방법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다카마쓰(가가와현)와 마쓰야마(에히메현)로 가는 직항편을 일주일에 3회 운영하고 있다. 마쓰야마로 가는 항공편은 화·금·일요일, 다카마쓰로는 화·목·일요일에 출발한다. 다카마쓰로 입국하고 마쓰야마에서 출국하는 일정(그 반대)도 가능하다. 인천에서의 소요시간은 각각 1시간40분 정도다.

글·사진 이윤기(자전거생활 여행사업부 이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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