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강둑길 | 달천(보은·괴산·충주)] 이루지 못할 사랑의 강인가, 불심이 녹은 벽계수인가

바이크조선 | 2015.07.22 09:52

가-가-가+가+

달천(보은·괴산·충주)

강 마을 사람들은 이루지 못할 남매의 사랑이 피눈물로 흘러 ‘달래강’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사람의 도리가 원초의 욕망을 가로 막아 이긴 징표는 ‘달내’의 낙조를 더 슬픈 보랏빛으로 채색한다 했다. 이 강은 세상을 떠난 곳의 세상, 속리산(俗離山)에서 출발한다. 벽조목 보다 더한 인고의 세월을 지나 부처의 이마(佛頂) 그 미간백호(眉間白毫)에 오른다. 이윽고 해탈의 법열 그 달디 단(甘勿) 니르바나에 다다른다면, 저 강은 피안으로 이르는 강, 달천(達川)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달천의 출발은 법주사 안마당을 돌아 나온 물에서 비롯된다. 백두대간 문장대(1054m)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물이 씨앗이다. 택리지는 삼파수(三派水)가 이 신비롭고 거대한 바위 문장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동으로 가는 물은 낙동강이요, 남으로 가는 물은 금강이요, 서로 가는 물이 한강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문장대를 기점으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금강까지를 포함하려면 속리산 천왕봉(1058m)이 기점이 되어야 한다.

달천이 수주팔봉을 지나면 강폭이 넓어진다. 향산리는 다리가 놓이기 전엔 외진 골짜기였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절집을 찾는 사람들로 주차장은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이 땅에서 부처를 믿는 많은 이들이 초파일에나 절집을 찾든지 등산길에 만나는 대웅전에 삼배하는 게 고작이다. 나는 어머니 치마꼬리 붙잡고 절에 가 불상을 처음 만난 모태신앙이다. 천주교 냉담신자가 가지는 부채의식만은 못하더라도 인자하신 부처님이 내 곁에 있다고 믿는 ‘친불교성향’인 것만은 확실하다.

속세를 떠난 골짜기에서 생겨난 물

갈 길에 쫓겨 법주사 팔상전에 서 계신 부처님께도 인사조차 못하고 나선다. 이내 우울한 정이품송을 만난다. 600년 세월을 견딘 노구라서일까, 눈 무게조차 못 이기고 기어이 팔뚝이 잘려 나가는 장애의 몸이 되고 말았다. 잘 생긴 외모에다 조선조 세조의 행차 때 눈치 빠르게 가지를 들어 올려 그 가상함을 인정받아 정2품 벼슬까지 얻은 귀족이다. 십 여리 근방에 정부인송(貞夫人松)까지 거느리고, 삼척 척준경 묘로 새 장가까지 든 복 많은 조선 제1의 소나무도 어쩐지 위엄이 옛날만 같지 않다. 그런 게 세월인지도 모른다.

정이품송은 속리산의 상징부호 같은 것이다. 세월 탓일까 오른쪽 날개가 부러진 뒤로는 사대부의 강한 기상이 많이 풀죽어 보인다(속리산면 사내리)

상판교를 건너면 달천은 북으로 치닫는다. 상판, 중판, 하판, 많이 듣던 이름이다. 가평군에도 조종천을 따라 상판, 중판, 하판이 있다. 판(板)자는 넓다는 의미가 전제된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길은 농토라야 살점을 다 발라낸 갈비 정도만 끼고 흐르다가 어딘가에서는 제법 흙을 부려 넉넉해진다. 거기에 ‘판’자가 들어가는 마을이 선다.

중판교에서 강가로 시원스레 난 길이 유혹한다. 저기 산 아랫마을로 길이 나 있으리라는 믿음은 보이스피싱처럼 잡아끈다. 1㎞를 달려 벼랑에 막혀서야  “역시 혹하면 안 돼.”하고 중얼거린다. 하판리에서 강가로는 자전거길이 반기지만 너무 산골짜기라 생뚱맞기 조차하다. 마을 이름이 ‘늙은이’다. ‘아래 널근이’를 그리 적은 거겠지만 참 별난 이름이다. 세강교를 건너면 황갈색 포장의 완전 자전거전용로다.  ‘묻지마 예산 퍼붓기’라는 말을 들어도 싸게 생겼다. 그렇게 들판으로 가는 자전거길은 온 데가 상처투성이다. 영양실조로 마른버짐이 일어서듯 아스콘이 다 들떠 속살을 보인다. 그냥 농기계와 사이좋게 나누어 쓰는 시멘트 포장정도면 족할 것을….

인적조차 드문 강둑길을 자전거전용로로 우레탄 포장한 행정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관리가 안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속리산면 북암리)

보은대추가 춤추는 산골

골짜기마다 대추밭이다. 삐죽하니 웃자란 보통 대추나무와 달리 보은대추나무는 수확하기도 좋게 어른 가슴 높이에다 키를 맞춘다. 흡사 멀리서 보면 두 팔을 벌려 지나는 길손을 맞는 듯이 다정하기조차 하다. 보은이 대추로 유명한 것은 “비야, 비야, 오지마라. 대추 꽃이 떨어지면 청산 보은 시악시 시집 못 가 눈물 난다.”는 옛 노래만 봐도 그렇다.

가뭄으로 물은 말라있고, 강바닥은 온통 풀더미다(속리산면 백현리)

 

키 작은 보은대추나무는 길손을 팔 벌려 환영하는 듯하다(속리산면 백현리)

대추의 주산지는 경산, 연산, 임실과 함께 보은이 꼽힌다. 다산(多産)의 상징이라 혼례, 제사상에 빠짐이 없고, 순하디 순한 과일이라 한약 처방 열에 여덟에는 꼭 들어간다. 비타민이 풍부하여 냉증 같은 부인병과 비염, 과민성대장증후군에도 좋단다. 개량종 ‘복조’가 주종을 이루고, ‘무등’, ‘금성’, ‘월출’ 같은 품종이 있으나 육안 식별은 어렵다. 생산량은 경산보다 뒤지지만 보은대추는 ‘약대추’로 대접을 받는다. 직경 30㎜는 별초이고, 25㎜가 특초다. 나머지도 상초, 중초, 골초로 나누고 요즈음은 비가림막으로 당도를 더 높인 대추도 나온다.

백현교와 장갑교를 건너서면 달천은 북으로 행진하던 발길을 서쪽으로 돌린다. 산외면 동화리와 원평리쪽 강둑은 때 아닌 여름에 눈을 맞은 듯 화안한 가로수 행렬이다. 이팝나무의 도열이다. 꽃이 하얀 쌀밥 같다. 이팝꽃이 풍성하면 풍년이 들고, 듬성하면 흉년이 들어 ‘점쟁이 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이맘때가 춘궁기였으니 쌀밥에 대한 포원은 좁은 논밭뙈기 안고 있는 강둑에까지 한스럽게 뿌리박고 있다. 입하(立夏) 즈음에 꽃이 핀다하여 이팝나무라 했다는 설, 벼슬을 해야 이팝을 먹을 수 있으니 군왕을 하늘같이 섬겨야 한다는 설도 있다. 허나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 조상님네 살림살이에 더 와 닿는 이야기가 있다. 열여덟 살 며느리가 하도 배가 고파 제사상에 놓을 쌀밥을 먼저 먹다가 구박을 받아 목숨을 끊고 그 한으로 피어난 게 이팝꽃이라니 말이다.

강둑 위의 평상은 여행자에겐 큰 격려다. 천렵하는 사람도 신이 났다(산외면 동화리)

이팝꽃이 활짝 꽃핀 강둑길. 하얀 쌀밥의 이미지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산외면 동화리)

서말지 무쇠 솥 넘치도록/
너실 너실 잘 퍼진/
저 이 밥/
찌들은 가난에/
배곯은 영혼들 위해/
뭉실 뭉실 한 김을 솟아 올리고 있는
(‘이팝꽃’ 전문, 신구자)

배곯던 날의 소망, 시루떡 찌는 길탕골

강둑길로 가다가도 큰길로 나가라고 막아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길탕골 입구도 그렇다. 더구나 근자에 세운 마을 유래비는 유난히 공이 많이 들어있다. 지금은 한 세대도 남아 있지 않은 입향시조 호(扈)씨에 대한 내력에서부터 시루산 탕골에서 시루에 떡을 찌고,  달천물이 흐르는 질골에서 질그릇을 설거지 했다고 하는 골짜기니 풍요롭기도 하였겠다. 당장 끼닛거리가 아쉬운 형편에 떡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마을의 경사이자 가난에 지친 삶에 몽환처럼 다가오는 위로가 아니었겠는가. 가난했었기에 먹고 살만해지자 골짜기는 더욱 자긍의 줄기가 되었으리라. 십시일반 뜻을 함께 한 마을사람들과 출향인사들의 고향사랑이 오석에 새긴 글자 한 획마다 깊이 담겨 있다.

강둑길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비포장 길(산외면 길탕리)

이식리와 봉황리를 지나면서도 강둑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잡초의 저항에 나의 종아리도 맞선다. 맞서서 나갈 수 있는 만큼이 관청이 힘을 기울여야할 구간이다. 별스럽게 생색을 낼 자전거길 개설을 원하는 게 아니다. 거기는 힘들어도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시늉만 내면 강마을 길손은 그저 감사하며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이다. 옥화자연휴양림에서 옥화대, 금관숲으로 이어지는 강은 골짜기가 깊어 도로와 동행해야 한다. 예나 제나 사람들은 용케도 좋은 곳을 찾아서 물을 즐긴다.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는 맛은 먹는 맛만큼이나 재미있다(화양9곡 입구)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이 물이 줄어든 강변에 여럿 엎드려 있다. 지방마다 이름이 달라 골뱅이, 고디, 올갱이로 부르는 다슬기. 숙취에 좋다는 다슬기를 ‘올갱이해장국’으로 표준어반열에 올린 것도 충청도 올갱이의 힘이다. 괴산 올갱이는 결국 달천과 그 새끼지천들이 키워낸 토종의 힘이다.

오천자전거길이 지나는 괴산읍 성황천은 주말인데도 인적이 드물다.(괴산읍)

여름날 강둑은 벚꽃이 지고나면 그늘을 선물한다. 귀만리 후평리로 가는 길은 강둑길과 논둑길이 뒤섞여 있다. 달천강과 숨바꼭질하며 가는 길목 후평교 아래에 청천학생야영장이 있다. 이미 점심도 지나 시장기는 장딴지까지 힘을 나눠줄 기력마저 없다. 강마을의 매운탕은 통과의례다. 모든 음식이 그렇기는 하지만 매운탕만큼 손맛에 달린 음식도 드물다. 무조건 매워도 안 되는 그 달착지근하고도 화끈함. 양식이 없는 잡어매운탕으로 정한다. 양식할 가치도 없는 모래무지, 꺽찌, 피라미가 빈약한 몸피에도 불구하고 탕맛을 위해 몸을 던졌다. 갈 길이 멀어도 포만감에 누운 평상 위로 여름 한나절의 해가 슬슬 기울 채비를 한다.

4촌도 필요 없다. 증평군 쓰레기가 괴산으로 들어온다고 결사반대다(괴산읍 제월대)

 

오랜 가뭄에 강물도 더위를 먹어 거품을 품고 있다. 강태공은 손맛을 좀 볼라나(감물면 충민사앞)

화양동 계곡의 언저리, 청천

골짜기마다 야영장이 들어서고 있지만 화양동 계곡은 그 원조쯤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우암 송시열이 이 나라 방방곡곡에 흔적을 남겼지만 화양9곡(국가지정문화재 명승)에 남긴 흔적은 입구에서부터 3㎞에 불과한 절승(絶勝) 곳곳 바위에 아예 각자(刻字)되어 있다. <大明天地崇祖日月(대명천지숭조일월)>, ‘조선의 하늘과 땅, 해와 달도 명나라의 것’이란 고집. 송시열이 누구인가. 노론의 선봉장으로서 도덕적 카리스마로 문화국가로 방향을 잡은 선비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이름이 오르내린 최대의 당쟁가이기도 하다. 그는 역모가 아니고 사약을 받은 조선조 유일의 사대부일 만큼 소신에 목숨도 걸었다. 그에겐 최고의 성인이라는 찬사와 편협한 고집불통 정치꾼이란 비난이 교차한다. 하지만 상대 논객 김익희가 붙여준 ‘말이 허물이 많다’는 뜻의 우암(尤庵)을 호(號)로 쓸 정도로 그는 큰 그릇이 아니었을까.

택시콜 연락처 간판이 정겹다(감물면 오성리)

들판의 새참도 세월 따라 배달밥으로 바뀌었다(감물면 오성리)

515번 지방도를 따라 북상한다. 청천 덕평에 이르면 달천은 속리산국립공원의 북쪽 끝자락인 칠성면의 깊은 협곡으로 사라진다. 산막이마을로 가는 길은 산속에서 똬리를 트는 임도를 넘어서야 한다. 골짜기 너머에 1957년 국내 기술로 처음 만든 괴산수력발전소가 들어선 바로 그  괴산호(칠성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산막이마을로 가는 유일한 자동차 길인 셈인데 반대편 산막이옛길을 이용해서 괴산댐 쪽에서 밀려드는 탐승객의 눈치를 볼 생각에 주저된다. 다음 기회에 무리를 해서라도 넘어볼 여지를 두고 오늘은 차재를 넘어간다.

이름만큼이나 낡아버린 간판 ‘만추다방’

 

물총 쏘며 노는 아이들. 시골길에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반갑다(불정면 창산리)

차재를 넘어 느티나무골 괴산으로

49번 국지도는 차재에 터널을 뚫어 놓았다. 터널통과는 그 자체가 공포다. 도저히 다른 길이 없을 때 눈 딱 감고 가는 수밖에 없지만 차재(다락재) 옛길이 남아 있다. 용도 폐기된 옛길은 고즈넉하다 못해 괴괴하기조차 하다. 도로 가운데까지 기어 나온 칡넝쿨을 밟고 갈 수 있는 것도 재미다. 생각만큼 정상은 높지 않다. 이미 길게 드러누운 산 그림자를 스치며 내려가는 내리막 그늘은 자전거가 느낄 수 있는 정복(淨福) 중 하나다. 이내 오천자전거길이 지나가는 문광교에 이른다. 괴산 읍내를 흐르는 성황천은 시내구간답게 자전거길이 제대로 맞아준다. 괴산도 소읍인지라  휴일인데도 사람의 모습이 듬성듬성하다.

뾰족한 산은 보통 문필봉으로 부른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조곡터널근처다(살미면 문주리)

오천자전거길은 이미 자전거에 올라 먼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오천(5川)은 쌍천, 달천, 성황천, 보강천, 미호천이다. 그 중 쌍천과 성황천은 한강 수계인 달천의 새끼다. 금강수계인 보강천과 미호천과는 배가 다르다. 괴산에서 하루 묵어가야 하는 여정이다.

 

국토종주를 하던 커플. 헛갈리는 길을 알려주자 문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살미면 노루목)

불심(佛心)이 흐르는 강, 부처의 이마 불정(佛頂)

우리나라 산골짜기 어디에 절이 없을까마는 유독 달천의 느낌은 남다르다. 세속을 떠난다는속리산에서 법주사를 거친 물줄기는 괴산에 오면 칠성면을 지나고 괴강(槐江)으로 불린다. 토속신앙인 칠성(七星)의 영검하심은 절의 뒤란이긴 해도 높은 자리에 칠성각을 올려놓았다. 경향각지에 있는 성불산 성불사가 감물(甘勿)에도 있고, 불정(佛頂)은 또 어떤가. 부처의 이마가 아닌가. 부처님의 미간백호(眉間白毫)의 광명상 자리가 여기다. 수달이 많이 살아 달천이든, 물이 달아 단내(달천)든 나는 구극(究極)의 니르바나(涅槃)에 이르는 달천(達川)이리라고 주석을 달아 본다.

고산정이 올라앉은 제월대에선 산막이옛길과 칠성면을 지나온 달천이 성황천을 다시 안고 몸피를 늘리는 모습이 시원하다. 배여울 이탄교를 지나면 강 저편에 김시민장군의 사당인 충민사가 건너다보인다. 감물면 소재지 오성교 앞에 이르러도 인적이 드물다. 하나 밖에 없는 다방도 ‘만추(晩秋)’란 이름처럼 쓸쓸하게 닫혀 있다. 오랫동안 마을에 터 잡고 있던 감물치안센터도 잠긴 채 이젠 불정치안센터에 꼽사리 신세다.

한껏 넓어진 달천은 한강이 부럽지 않다. 생활자전거로 긴 여행에 나선 사람은 표정이 없다. 고단해서겠지(충주시 단월동)

감물중학교를 끼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온통 뽕나무 천지다. 누에치기를 나라에서 장려하던 시절에 심은 나무는 키가 웃자라 있다. 검붉게 익은 오디가 제풀에 떨어진다. 차들도 뜸한 길이니 일부러 오디나무에 매달려 추억의 맛을 기대한다. 어쩐지 오디에 윤기가 없다. 어릴 적 먹던 그 윤기 나는 검붉은 열매는 어디로 간 걸까. 날이 가문 탓일까, 이미 촌스럽다고 떠나보낸 내 입맛 탓일까.

불정면 소재지는 목도교를 건너면서부터다. 몇 사람이나 찾아올까 싶은 장터도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지붕을 올렸다. 목도라는 이름이 돌림자인 간판은 한 업자의 같은 글체로 만들어져 자유롭지 못하다. 역시 논밭 뙈기가 많아야 부자다. 음성천이 달천에 합류하면서 만든 충적지가 목도리와 이담리의 제법 너른 들판이다. 한 가락 하는 고개 대간치(대간재)를 넘어 수주팔봉으로 가야 한다. 달천이 홱 물꼬리를 치며 조곡리 골짜기로 혼자 가는 탓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괴산IC 못 미처 보이는 조곡터널 근처의 아름다운 풍광이 바로 그곳이다. 대간치에서는 전기자전거의 조력도 힘겹다. 전기자전거를 우습게 여기는 건각(健脚)들도 먼 여행길에서는 유혹을 받을 만하다.

탄금교에 이르면 달천도 이름값을 다한다. 한강자전거길의 시작이다(충주시 탄금교)

수주팔봉에서 탄금대까지

대간치에서 수주팔봉까지는 한달음이다. 하기야 강둑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장쾌함을 내 다리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백두대간 황병산과 선자령을 넘나들던 무모한 등판을. 아 옛날이여.

수주팔봉은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정거장이다. 진안 죽도와 출생배경이 같다. 물길을 돌려 땅을 만들려던 사람들이 1963년 팔봉의 허리를 면도날같이 잘랐다. 장마 때를 제외하고 폭포라고 하기에는 간지러운 물이 그래도 흐른다. 폭포가 귀한 이 땅에서 그게 어딘가 하면 못 봐줄 일도 아니다.

향산리는 다리가 놓여서야 비로소 3번 국도와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라 헤매는 곳도 노루목근처다. 수주팔봉으로 가는 길은 심산유곡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주저하는 것이다.

유주막다리까지 달천 옛길로 달리면 이내 충주시내로 접어드는 강둑이다. 임경업장군의 묘지도 풍동 산 너머에 있고, 신립장군이 임란패전의 마지막 수를 둔 땅이 이 언저리이리라. 비포장1.5㎞를 그대로 둔 달천강둑의 자존심 때문일까. 탄금대에 이르러 한강에 안기면서도 전혀 비굴하지 않다.

<여행 만들기>

속리산에서 충주까지는 무리하면 하루에 못 달릴 길은 아니다. 그러나 괴산에서 1박을 작정하면 여정이 느긋해진다. 산막이옛길이 있는 괴산호까지도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다. 속리산이나 괴산, 충주 모두 시외버스편이 좋아 2회에 걸쳐 나누어 여행할 수도 있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강둑의 잡초들과도 친해져야 강둑길 여행의 긴장과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강둑길에서 만난 사람>

한상복(61)

한상복(61)

괴산군 감물면 소재지 강둑에서 만난 나와 동갑내기다. 감물에서 태어나 고향을  지키고 있다. 괴산군청과 경찰서라는 로고가 찍힌 조끼를 입고 있어 물었더니 청소년 보호활동, 산불감시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단다. “저기가 감물지서(치안센터)인데 이제 경찰들이 없어요. 모두 불정면으로 가고 가끔 순찰 나오지요. 그래서 지서 텃밭에다 고추랑 감자 배추를 심어 놓았지요. 경찰들도 좀 주고, 나도 좀 먹고….” 쇠락해가는 고향 감물에 대해 소상한 얘기를 전하는 그에게선 사람 좋은 냄새가 절로 전해온다.

정찬주(17)

정찬주(17)

괴산읍내 자전거길에서 만난 괴산고 1년생이다. 부부군인인 부모님을 따라 부산에서 살다 상사인 어머니와 함께 3년 전 괴산으로 왔단다. 엘파마 하이브리드를 튜닝해서 타고 있는데 MTB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 전에 강원도 양구에서도 살았어요. 아버지는 중령으로 명예전역을 하셨고, 괴산의 친구들하고는 너무 정이 들었지요. 전학을 여러 곳 다녔지만 오히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어떤 환경이든 적응능력이 생기는 같습니다.” 과학과 국어를 좋아한다니 그는 분명 문과 이과를 넘나드는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지 싶다.

<숙박>

영빈장여관(괴산) 043-832-2660 ,서부장여관(괴산) 043-832-1775

두 곳 모두 충청북도관광안내에서 소개되는 숙소다.

<교통편>

- 동서울→속리산 07:30첫차, 18:30 막차(1일16편), 센터럴시티→속리산 07:00첫차(1일4편)
- 동서울→괴산 06:50첫차, 20:10막차(1일23편)
- 충주→동서울 06:00첫차, 23:00막차(1일48편)
※ 동서울종합터미널1688-5979/괴산시외버스공용터미널043-833-3355/충주공용버스터미널043-856-7000)

<보은, 괴산, 충주 음식점>

청주식당(속리산)

청주식당(속리산)

청주식당(속리산) 043-543-4269

법주사 앞 대형 주차장 입구에 있다. 음식점들이 저마다 산채백반 등 요란하게 광고하고 있어 혼이 나갈 지경이다. 된장찌개백반을 시켜도 다양한 산나물과 반찬이 나온다. 관광지라 음식값이 비싼 편. 산이 깊어 홑잎나물 새순무침까지 맛을 보니 평균 이상의 점수는 된다. 산채정식 1만5000원, 표고덮밥 1만2000원, 산채비빔밥 8000원, 된장찌개백반 7000원

기사식당(괴산)

기사식당(괴산)

기사식당(괴산) 043-833-5794

괴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기사식당이다. 괴산하면 올갱이국이 우선이다. 더구나 아침에 하는 해장국으로서는 제격이다. 올갱이국을 파는 음식점들이 널려 있지만 옛날 방식으로 해서 손맛이 난다는 평. 까다로운 운전기사의 입맛을 맞출 정도면 말이 필요 없다. 올갱이해장국, 청국장, 된장찌개 각 7000원

한성감로정(충주)

한성감로정(충주)

탄금대입구에 있는 한식집이다. 갈비탕이나 육개장 같은 단품도 있지만 주 메뉴는 한정식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다녀가면서 남긴 사인이 자랑스레 걸려 있다. 자전거 단체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 국토종주길에도 들리기에 딱 맞는 거리다. 한정식 1만2000원, 갈비탕8000원, 육개장 7000원

천생연분(괴산) 043-833-3957

청천학생야영장 옆 매운탕집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잡어매운탕(2인) 2만5000원

<참고자료>

1. 한국의 발견, 충청북도, 뿌리깊은나무, 1989
2. 한국을 지켜온 나무이야기, 원종태, 밥북, 2014
3. 팔도대추,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4. 유쾌한 발견, 성석제
5. 괴산군청 홈페이지

<협찬>

팬텀 26 XC(전기자전거)- 삼천리자전거

풍경에 건네는 말(40)   by 조용연

달천이 괴산에 이르면 괴강으로 불린다. 느티나무의 뜻이 담긴 ‘괴(槐)’자를 쓰는 괴산(槐山)은 백두대간의 언저리답게 골짜기가 깊다. 달천의 조카뻘 되는 성황천변에서 만난, 자전거 타는 소년들. 활달하면서도 예절바른 그들은 스스로 ‘괴고1년생’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하는 그런 말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의 우정에서 설자리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괴고 1년생

부처의 강 길섶으로
느티나무 그늘이 내려앉았다
성황님께 빌어 얻은 아들의 아들이
괴강에 발 담그고 뜨는 물수제비

소년들의 바퀴는 우정이다
앞바퀴를 넘보지 않고
쳐지지 않는 또 한 바퀴로
연(緣)이 연(緣)의 연(緣)이 된다.

체인이다.
맞물려 질기다
아우디든, 올림픽이든
굴렁쇠의 동심원으로 간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연(緣)으로 만난
길섶 느티나무 아래 그늘
신발 끈 고쳐 맬 때 하냥 기다리는
지긋한 눈길이면 되니까

글·사진 조용연(여행작가, 前 울산지방경찰청장)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현 에스원 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7월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바이크조선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