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자전거, 캠핑 3종 세트로 태안의 속살 즐기기
태안은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길이 없거나 아주 멀기 때문이 아니다. 비행기, 고속도로, KTX의 속도에 익숙해진 이들의 습관적인 조바심 탓이다. 날렵하고 힘 좋은 스포츠카를 몰아도 태안으로 가는 길은 어딘가 불편하다. 시가지를 거쳐 만리포로 가는 여정 곳곳이 공사판이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중순, 태안은 좁고 구불구불했던 옛 길을 곧게 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태안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이 충돌해 많은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우리나라 해상 기름 유출사고 가운데 최대,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유출된 기름으로 형성된 짙은 기름띠가 사고 당일 만리포·천리포·모항으로 유입됐다. 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팔을 걷고 나섰고,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참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만리포 일대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의 대표적인 해변 휴양지다. 넓고 깨끗한 백사장과 맑은 물, 짙은 해송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은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뛰어난 자연환경을 지녔지만 이곳은 한 철 피서지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오솔길을 걸어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해안을 달리며, 바닷가에서 캠핑을 즐긴다면 계절 불문하고 찾아도 좋을 곳이다. 이달에는 자전거와 텐트를 차에 싣고 만리포 일대 숨은 비경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국사봉 트레킹 만리포, 천리포 해안이 발아래
태안은 멋진 곳이다. 이번엔 바다 이야기가 아니다. 만리포해수욕장을 감싸 안은 짙은 해송 숲과 아기자기한 산길에 대한 칭송이다. 긴 백사장을 자랑하는 만리포해변은 나지막한 산줄기가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해발 100m 남짓한, 그야말로 야산 수준을 넘기 어려운 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다. 이 산록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사철 푸른 해송이 가득하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를 보면, 만리포에서 천리포로 이어지는 해안선 뒤편의 산줄기에는 이름 있는 봉우리가 없다. 천리포수목원 동쪽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는 121.8m 봉이 가장 높다. 이 봉우리로 오르는 산길이 만리포와 천리포 해변에서 이어진다. 태안 해변길 중 하나인 이 오솔길은 만리포에서 신두리까지 이어진 ‘소원길’의 일부 구간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생각보다 숲이 짙고 멋진데요.”
만리포해수욕장의 청소년수련원에서 출발해 능선으로 오르는 짧은 비탈길을 걸으며 숲의 규모에 놀랐다. 겉에서 볼 때는 야산의 잡목 같아 보이는 소나무들이 의외로 우람하고 품위 있기 때문이다. 울창한 해송 사이를 걸어 능선 위로 올라섰다. 길옆으로 ‘국사봉’ 방향의 이정표가 연이어 나타났다. 이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121.8m 봉우리가 바로 국사봉이었다.
“여기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는 산책로 같은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니 서서히 고도가 높아진다. 가끔씩 서쪽으로 시야가 터지며 시원한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공터가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긴 계단길을 통과하니 전망대와 정자가 있는 국사봉 정상이다. 널찍한 데크를 설치한 전망대에서 만리포와 천리포 해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얀 모래밭과 부서지는 파도를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이 장관이다.
하산은 천리포 방면의 능선을 따른다. 초입부가 조금 가파르지만 그리 길지 않아 다리가 풀릴 정도는 아니다. 북쪽으로 진행하다 천리포수목원의 철조망을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을로 내려선다. 민박집과 펜션이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면 커다란 호텔 같은 천리포수목원 에코힐링센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산길 트레킹은 모두 끝난다.
국사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에 수망산(149.6m)과 큰재산(117.3m)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있다. 하지만 태안 해변길은 찻길과 임도를 거쳐 이 산봉우리들을 스쳐 지난다. 산길의 호젓함이나 전망대의 조망은 국사봉 쪽이 더 낫다.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곳이다.
태안해변길 소원길 중 국사봉 코스는 만리포해수욕장을 베이스캠프 삼아 머물며 트레킹하기 좋은 구간이다. 나지막한 산줄기로 고도차가 크지 않아 큰 힘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다. 산길이 넓고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어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듯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만리포해수욕장 청소년수련원- 0.5km - 주능선 공터 - 1.5km - 삼거리 - 0.2km - 국사봉 정상 - 0.8km - 천리포수목원 철조망 - 0.5km - 천리포수목원 에코힐링센터 - 2.0km - 청소년수련원
해변길 자전거 투어 진짜 태안의 비경은 여기 다 있다!
태안의 바닷가는 해식애와 백사장의 연속이다. 만리포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여러 개의 해변이 줄지어 포진하고 있다.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구름포 등 여러 해변이 굽이진 곳마다 자리했다. 하지만 이런 외진 곳까지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리포까지는 포장도로가 이어지지만 그 위로는 도로 사정도 좋지 않다.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자전거에게는 즐거움이 된다.
“임도나 비포장이 제법 많으니 산악자전거가 편할 겁니다.”
만리포에서 출발해 천리포로 이어지는 찻길을 벗어나니 곧바로 좁은 마을길과 임도가 시작됐다. 해변에 설치한 모래를 잡기 위한 그물이 눈길을 끌었다. 바람이 심한 날이라 찻길까지 고운 모래가 날아와 미끄러웠다. 조심스럽게 천리포 해안을 돌아보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하늘을 가리는 짙은 숲이 고갯마루까지 이어졌다. 길 양옆은 천리포수목원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경관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고갯마루의 삼거리에서 왼쪽 백리포 방향의 이정표를 보고 들어서니 곧바로 전망대가 나타났다. 백리포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임도를 빠져나와 의항리마을로 내려서는 넓은 찻길을 타고 속도를 냈다. 의항리해변을 지나 계속 구름포 해변으로 임도가 이어졌다. 해변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바다를 조망하는 재미가 남다른 구간이었다. 구름포 입구를 지나 큰재산 서쪽의 임도를 타고 계속 이동하면 절벽 위에 조성한 태배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까지는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태안반도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유류피해 역사전시관이 있는 태배전망대는 전망이 환상적인 곳이다. 북쪽으로 점점이 흩어진 뱅이섬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 바다 건너 신두리해안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정말 뛰어난 입지를 지닌 전망대였다.
태배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내려서면 아늑한 분위기의 안태배 해안이 나타난다. 300m 남짓한 백사장과 조용한 바다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천천히 백사장 남쪽 끝으로 이동한 다음,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이 계단이 남쪽 신너루해변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소나무 숲이 근사한 신너루해변에서 자전거에 올라타 다시 의항리마을의 항구 쪽으로 넘어왔다. 작은 포구에서 간척지의 둑을 타고 남쪽으로 진행하다 큰 길로 방향을 돌렸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로 갈 수도 있지만 자전거를 들고 걸어야 하는 곳이 있어 생략했다. 의항리마을부터는 다시 왔던 길을 역으로 밟아 만리포로 향했다.
만리포 북쪽 의항리 일대의 해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가치가 있을 만큼 수려한 풍광을 지녔다. 이곳에 태안해변길 2구간인 소원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찻길과 소원길의 임도를 이용해 자전거 투어가 가능하다. 짙은 숲과 태양이 빛나는 해변, 바닷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구경할 수 있는 코스다.
만리포 - 2km - 천리포 - 1.3km - 백리포 입구 - 2.8km - 의항리해변 - 2.1km - 태배전망대 - 1.4km - 신너루 해변 - 1.1km - 의항항 - 1.9 km- 의항마을 입구 - 5km - 만리포
만리포 해변 캠핑 & 주변 명소 해송 숲과 백사장이 조화로운 베이스캠프
태안에서 트레킹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해수욕을 즐기려면 확실한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운동 후 재충전을 위해 편의시설을 잘 갖춘 캠핑장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태안에는 해변마다 많은 캠핑장이 있다. 만리포나 백리포, 구름포 등에도 야영할 수 있는 캠핑장들이 산재했다.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편의시설이나 접근성 면에서 볼 때 만리포가 가장 뛰어나다. 물론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번잡하고 시끄러울 수 있다. 하지만 성수기만 피하면 만리포에서도 조용한 캠핑이 가능하다.
만리포의 캠핑장 해변 북쪽 솔숲 부근에 산재해 있다. 성수기에는 대부분의 사유지는 줄을 치고 이용료를 받는다. 화장실과 취수장이 가깝고 해변도 지척이라 캠핑과 물놀이에 최적의 환경을 지니고 있다. 만리포 입구 주차장 부근에는 대규모 집단시설지구가 있어 손쉽게 숙박과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다.
천리포는 캠핑할 만한 곳은 마땅치 않다. 대신 호젓한 분위기의 민박집과 펜션이 많다. 숙박할 곳을 정해 놓고 즐기려는 이들에게는 유리하다. 천리포수목원과 천리포어촌계 수산물판매장이 가깝다는 것도 장점이다.
백리포해변에도 캠핑장과 민박집이 있다. 해변 자체가 작고 아담해 분위기가 아늑한 것은 좋지만,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다. 구름포에는 사설 오토캠핑장이 있어 베이스캠프로 이용이 가능하다. 작은 해변의 캠핑장들은 호젓하고 성수기에도 비교적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만리포해수욕장 대천, 변산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는 곳이다. 백사장의 길이가 약 3km, 폭 250m 이상이다. 모래가 곱고 부드러운 데다 양호하고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의 해수욕장으로 사랑 받고 있다. 대규모 시설단지에 충분한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췄다. 인근 방파제에서는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반야월의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만리포에서 북쪽으로 3~4km 간격을 두고 천리포와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가 이어진다.
천리포수목원 천리포 해변의 산지에 조성되어 있는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 한국이름 ‘민병갈’이라는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가 설립하고 가꾼 곳이다. 그는 한국에 해군장교로 복무하러 왔다 우연히 들른 태안의 천리포에 매료되어 땅을 매입하고 수목원을 만들었다. 민병갈씨는 한국인으로 귀화해 평생 수목원을 일구다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약 60ha(18만 평) 규모인 천리포수목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목련, 호랑가시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무궁화 등 1만5,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관람은 4~10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3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천리포수목원 에코힐링센터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입장료 성인 9,000원/청소년 5,000원/어린이 4,000원. 홈페이지 www.chollipo.org
천리포 어촌계 수산물판매장 천리포해변 북쪽 끝의 항구에 조성된 수산물판매장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한다. 방파제 뒤편의 널찍한 공터에 2006년 7월 개장한 시설로 대지 964m2, 지상 2층 규모다. 여러 집이 모여 있어 우럭과 꽃게, 멸치 등 태안지역에서 출어되는 수산물을 멀리 가지 않고도 맛볼 수 있다. 자연산만 취급하는 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