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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라이프ㅣ2015 치와와사막 횡단(하)] 1,200km 치와와의 끝, 도전은 계속된다

글·남영호 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 2015.06.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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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내내 괴롭힌 폭우와 위험… 루트 수정 거듭해 횡단 종료

멕시코 루트 상 유일한 마을인 코야메(Coyame)에 도착해서야 휴식다운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창문이 있고 하얀 이불이 놓인 침대가 있는 방은 사막에 발을 들이고는 처음이었다. 아침에 뭘 해먹을지 걱정할 필요 없고 늦은 저녁 지친 몸으로 식사 준비할 수고도 필요 없었다. 마을에 단 두 곳뿐인 음식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정말 고생을 하고 나면 그저 내가 필요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게 된다.

올해 마을이 생긴 지 300년이 된 코야메는 치와와사막의 한복판에 있는 곳인 만큼 다른 도시들과는 외떨어져 있다. 마을에선 우리 일행이 도착할 거란 소식을 듣고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그렇지만 예상날짜에 도착하지 못해 환송행사로 변경되었다. 잠시 쉬었다 가는 우리를 향해 온 마을 주민들이 나와 빨간 천을 흔들며 “Adios~(잘 가세요)”를 외쳤다. 이 지역 단체장은 특산주인 소톨을 선물하며 즐거운 여정을 마치고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 코야메에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그 푸근함에 익숙해지면 발길을 떼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치와와 원정의 최종 목적지인 화이트 샌드. 지난 시간의 고생을 잊게 할 만한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모험의 불청객 폭우 때문에 고립 위기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비가 코야메에서 쉬는 동안은 잠시 멈췄다. 그 덕에 옥상에 텐트와 침낭 등을 널어 말릴 수 있었는데, 코야메를 떠나던 날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폭우다. 깨끗하게 정비했던 장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진흙범벅이 되었고 급기야 온 몸이 젖어 추위가 느껴졌다.

저녁이 되어 나에게 접근하던 경찰차량은 진흙탕에 빠져버려 윈치를 걸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한 번은 차의 앞부분이 진흙탕에 처박혀 고꾸라져 있는 꼴이 되기도 했다. 비로 일대의 온 사막이 미끄러운 진흙탕이 되었다. 더군다나 경사진 곳에는 물길마저 생겨 미끄러질 경우 바로 1~2m나 되는 구덩이에 그대로 처박힐 정도였다.

적당한 야영지를 찾아 헤매던 중 난데없이 차 한 대가 나타났다. 중년의 두 남자였다. 일행들과 몇 마디를 나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가다간 꼼짝없이 이곳에 갇힐 거란 이야기였다. 그리고는 우리를 그들의 농장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다.

맑은 날의 치와와. 산악지형이 많은 이곳에는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다.

1 치와와농장 사람들. 대부분의 농장주들은 백인계이고 오래전 이곳에 살던 인디오들의 후예는 그곳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 2 코야메의 주민들은 마을 설립 300주년에 방문한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 줬다. 떠나는 날 이 지역의 특산품인 ‘소톨’이라는 술을 선물 받았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지역은 미국 국경과 매우 가까운 곳이고 그만큼 마약 밀매단이 어느 곳보다도 활동을 많이 하는 지역이라 들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염려되었다. 그렇지만 이 막막한 사막을 여행하는 우리에게까지 해를 끼치진 않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있는 다섯 명의 경찰들을 믿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이곳 말로는 ‘Rnacho’라고 하는 농장은 치와와주의 동편인 사막지역에 광범위하게 널려 있다. 특별한 작물 재배는 어렵지만 일부 지역은 소를 키우기엔 좋은 환경이라 수백 ㎢에 이르는 거대한 목장이 가능한 것이다.

2주 만에 목장을 찾았다는 그는 지방 공무원이자 목장의 주인이었다. 단층짜리 허름한 숙소였지만 하룻밤을 쉬어가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적어도 진흙탕 위에 텐트를 치고 자는 것보단 백 배 나아 보였다. 목장식 저녁을 선보이겠다며 주인은 직접 만든 육포를 잘게 찢어 감자와 채소를 넣은 수프에 넣고 끓여 주었다. 맛은 아주 건강했다.

어떤 인공감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재료 본연의 맛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나에겐 이것만 한 보양식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안락함은 늘 금방 지나가는 듯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아침이 왔다. 여전히 비는 멈추지 않았고 고어텍스 재킷과 바지로 중무장하고도 모자라 방수장갑을 대신할 용도로 비닐을 잘라 자전거 핸들 양쪽에 묶어 비막이를 만들었다. 문제는 내가 아니었다. 사람은 어떻게든 이 길을 걷고 기어서라도 가겠지만 자동차는 예외였다. 구덩이에 또 다시 몇 번을 곤두박질치고 나서야 경찰과 지원팀은 사막에서 당분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차량의 상태도 물론이거니와 며칠 더 고립될 경우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판단에서였다.

 

 시간은 그렇게 힘들고 지루하게 지나갔다. 비가 그치고서야 다시 길을 이어갔고 멕시코 루트의 유일한 사구지역인 사말라유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도착을 앞둔 설렘보다 국경 근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는 경찰의 말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전과 달리 그들은 우리를 근거리에서 에스코트하며 마지막 구간을 함께했다.

마지막 산악지역을 넘어 내리막길을 달리던 중 펑크가 나면서 바이크가 멈춰 섰다.

우리를 초대한 농장주인과 경찰들은 밤을 새며 이야기하고 웃었다. 적막한 사막에서는 작은 만남에도 이렇게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연스레 시선이 땅으로 향했는데 눈앞에 뭔가 묵직한 쇳덩이가 보였다. 일반적 물건이 아니기에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기관총에 쓰이는 탄창이었다. 그것도 총알이 가득 장전된 상태였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런 무장단체들이 실제로 이 길을 지났을 거라 생각하니 이제껏 온 것이 다행이지만 남은 길에서 어떤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경찰은 내가 발견한 탄창을 총에 끼워 보더니 누군가 같은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길을 재촉했다.

언덕을 넘자 사말라유카 모래언덕이 보였다. 멕시코 구간을 무사히 넘은 것이다. 참 길게 느껴졌던 시간을 순식간에 건너뛴 기분이었다. 척박한 오지를 건너며 가장 맞서기 힘든 것은 혹독한 기후나 자연이 아니라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한 위험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위험에 대해 긴장을 한 탓인지 좀더 적극적으로 이 사막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크게 들었다.

치와와를 뒤로하고 시우다드후아레스(Ciudad Juarez)에 들어서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후아레스 지역 부지사 등 일행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치와와 종단이라는 계획에서 이제 한 구간을 마친 것이고, 앞으로 미국 쪽에 걸쳐 있는 치와와가 남아 있다.

후아레스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곧장 엘파소(El Paso)로 건너갔다. 일정이 늦어진 만큼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없애야 했다. 루트와 장비를 점검하고 엘파소에 도착한 지 이틀 후 투산(Tucson)으로 향했다.

현지인 서포터였던 라울과 그의 차. 5,000cc 8기통 엔진도 비에 젖은 사막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사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선인장이 산악지역에서는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선인장의 키는 산악지형에 가까울수록 커진다.

 드디어 치와와의 끝에 서다

투산은 엘파소 서쪽에 있는 도시인데 이곳을 종착지로 정한 데는 치와와사막의 형태에서 가장 긴 루트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막의 형태가 마치 아프리카 지도처럼 생겨 멕시코에서는 남북으로 길고 미국에서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실행 이틀 만에 수정되어야 했다. 국경수비대에 계획을 알리고 길을 떠났는데 투산까지의 루트 중 불과 수십 km를 제외하면 모든 길을 자동차 도로를 통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넘을 수 없는 철책과 개인사유지의 경계로 막혀 있었다. 국경과 인접한 이곳 역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국경수비대의 의견이었고, 그 철책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콜롬버스라는 작은 마을을 조금 지난 엘파소 기점 150km 지점에서 다시 시작지인 엘파소로 돌아왔다.

자동차 도로로 가는 것은 애초에 계획대로라면 의미 없는 여정이라 판단했다. 다시 며칠 동안 사막의 끝으로 향하는 루트를 선택해야 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준비한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엘파소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화이트 샌드(White Sands)에서 끝을 내는 것이었다. 이곳은 치와와사막의 가장 북쪽으로, 최남단에서 출발한 우리 여정이 이곳에서 끝난다면 종단을 마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이트 샌드는 일반에게 공개된 사막지대지만 미사일 발사장과 각종 군사기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이트 샌드 이남 지역, 즉 우리가 지나야만 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미국 내 최대 군사기지로 외부인의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군인들의 사막전에 대비한 전술 훈련은 물론이고, 각종 화기를 테스트하는 곳인 만큼 절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그 규모도 동서로 약 50km, 남북으로 100km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우리는 사막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군사지역을 침범하지 않는 루트를 선택해야 했다. 사방으로 뚫린 포장도로를 벗어나야 하는 것도 조건이었다. 내가 선택한 루트는 엘파소에서 동북으로 40km 떨어진 레드 힐(Red Hill)이란 산악지대를 지나 화이트 샌드의 동편에 있는 링컨 국유림(Lincoln National Forest) 산악지대를 경유하는 방법이었다. 평균고도는 1,600m이고 최대고도는 3,000m다. 이동거리는 250km다. 고도의 변화가 없는 지역에 비해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적게는 3분의 2에서 많게는 절반까지도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엘파소를 벗어나 사막으로 접근하기 위해 길을 들어서자 곧장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거대한 군용 트레일러가 장갑차를 싣고 모래폭풍에 가까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몇 대가 지나고 나니 눈만 빼고는 온통 뽀얗게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화이트 샌드 구역. 샌드보드를 탈 수 있도록 개방한 곳도 있지만 생태계 보호를 위해 데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탐방센터 건물에는 기념품점, 안내소, 박물관 등이 갖춰져 있다.

진흙길을 달리는 일은 고된 일이지만 성취감만큼은 그 어느 것에 못지않았다.

군사지역과의 경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악지역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만난 농장에서 한 남자가 우리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이 사막을 지나 링컨산악지대를 넘어 화이트 샌드로 간다고 하자 산으로 올라가는 지역은 우기 때 휩쓸려 이동이 거의 불가능할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선택한 루트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 정도가 어떤지 어느 정도의 기준에서 얘기하는 것인지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만약 갈 수 없을 정도라면 다시 돌아가면 될 문제였다. 

루트는 어느 정도 험하기는 했지만 멕시코처럼 가시덤불을 헤치고 간다거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야영지를 찾는 것은 이전만큼 쉽지 않았다. 일반적인 형태의 사막에서는 사구의 형태, 바람의 방향과 해가 뜨는 방향 등을 고려해 적당한 곳을 찾기가 수월한데 산악지형의 사막에서는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지표가 굵은 자갈이 많고 키가 큰 잡목들이 많이 자라는 등의 이유이다. 거기다 동물도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3일간에 걸쳐 링컨산악지대를 통과하자 해발 3,000m에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화이트 샌드에 도착하기 전 거쳐야 하는 앨라모고도(Alamogordo)라는 작은 도시의 고도가 1,400m 정도니 30~40km의 짧은 거리 동안 고도가 무려 1,500m 이상 낮아지는 셈이다.

바이크 타이어의 압력을 일반 도로주행 때보다 줄이고 산악지대에서 다운힐을 시작했는데 브레이크를 놓자마자 페달을 밟지 않아도 빠른 출발이 가능할 정도였다. 속도계를 보니 좁은 산길에서 시속 60km를 넘나들 정도다. 4월 봄 날씨인데도 일대에는 아직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산길이 포장도로와 만나는 구간에는 프레넬협곡(Fresnel Canyon)이 있었다. 길은 깊은 협곡을 지나서 곧장 앨라고모도로 이어졌다. 마을에서 25km를 더 이동해서 화이트 샌드에 도착했다. 마지막 구간을 기대 이상의 속도로 오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온통 하얀 석회물질로 이뤄진 화이트 샌드는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파란 바다와 흰 구름의 풍경이 반대가 된 착각마저 들 정도다. 지난 시간의 고된 경험이 이 한 장면의 풍경으로 보답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두 발로 목적지에 섰다는 고마움은 분명했다.

3 치와와 원정의 최종 목적지인 화이트 샌드에서 / 4 폭우로 만들어진 진흙이 바이크를 지배했다.

 10번째 도전, 도전은 계속 된다

치와와 원정은 나에게 10번째 도전이었다. 10이라는 숫자가 가진 나름의 의미도 있는데 무엇보다 11번째를 꿈꿀 수 있는 지금 상황이 감사하다. 또 한편, 모두에게 주어진 지구의 대자연이 사람에 의해 넘지 못할 경계가 만들어지고, 분쟁과 다툼으로 위협받는 상황은 무척이나 안타깝다. 때론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그곳에 발을 들이고도 소극적인 자세였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화이트 샌드의 뜨거운 햇볕 아래에 다시 다음을 꿈꾸고 준비한다. 


치와와사막 주변의 추천장소

1. Museo del Desierto Chihuahuense

델리시아스(Delicias)시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치와와사막과 사막 전반에 관한 것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멕시코 치와와사막의 생태와 역사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델리시아스는 치와와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는 작고 조용한 도시다.

2.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화이트 샌드는 하얀 사막이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같은 하얀 사막들이 대부분 염분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이곳은 매우 고운 석회물질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의 지역은 군사시설로 인해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지만 일부 구간이 민간인에게 공개되고 야영도 가능하다. 작은 박물관에는 이 지역의 자연, 생태 그리고 군사시설로의 이용에 관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설명한 자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