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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Y] 비밀스런 호수의 진면목, 의암호 호반길

바이크조선 | 2015.06.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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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의암호 일주코스 완공

조용하고 정체된 듯한 비밀의 호수, 그리고 역시 그윽한 신비감이 감도는 분지가 어우러진 춘천은 지형적으로, 인문적으로 대단히 특별한 곳이다. 춘천을 품고 있는, 혹은 춘천이 안고 있는 의암호를 일주하는 자전거길은 초보자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경치와 분위기, 전설과 사연에서 단연 전국 최고의 호반길이다

바닥이 투명한 스카이워크가 중간에 있는 아찔한 교량 구간. 의암호 일주 코스 중 백미다

호수와 강은 같은 듯 다르다. 고여 있는 호수는 정적(靜的)이고, 흐름이 있는 강은 동적(動的)이다. 호수는 넓게 퍼졌고, 강은 좁고 길다. 호수가 여성적이고 차분하다면, 강은 남성적이고 역동적이다.

움직이는 사물에서 비밀스런 신비감은 깃들지 않는다. 언제나 멈춰있고 조용한 정적 속에 비밀은 숨어 있고 또 그 향기를 드러낸다. 사람의 표정을 봐도 웃고 우는 동적인 얼굴은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무표정은 속마음을 숨겨서 비밀스런 느낌을 주고 궁금증을 자아낸다. 같은 의미로 갇힌 물이 빚어내는 호수는 비밀스럽고 어딘가 신비롭다. 네시호나 천지처럼 괴물 전설도 항상 호수에만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호숫가는 호변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호반(湖畔)이라고 해서 이름부터 강변이나 해변과 차별을 둔다.

1 출발지로 잡은 공지천공원의 에티오피아한국전참전기념관. 그 멀고 가난한 나라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6037명을 파견해 121명이 전사했다.  2 좁은 골격을 제외하고 모두 투명유리로 된 스카이워크는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걷기 힘들 정도로 스릴 넘친다

호반길, 호반의 벤치, 호반의 산책, 호반의 연인, 호반의 도시… 어떤 말에도 ‘호반’이라는 말이 덧붙으면 비밀스런 신비감과 낭만적인 운치가 배가된다. 그래서 모든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호반에 있다. 레만호 같은 알프스를 낀 비경의 호수들과 중국의 동정호, 일본의 비와호 같은 호수가 다 그렇다.

국내 최고의 호반길

그렇다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와 호반길은 어디일까. 자전거 입장에서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충주호와 대청호를 떠올릴텐데, 내륙의 산간지대에 자리한 충주호와 대청호는 매우 아름답고 산자수명하며 지형이 입체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규모가 커서 호반길을 일주하자면 70~100㎞에 달해서 베테랑 동호인들만의 영역이다. 초보자도,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호반길은 단연 춘천 의암호가 일순위다.

의암댐과 삼악산(654m). 좁은 협곡을 이용해서 낮고 짧은 댐으로 의암호 같은 거대한 인공호수를 조성했다

이미 춘천은 ‘호반의 도시’의 대명사다.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되면서 호반의 도시로 탈바꿈했으니 ‘호반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은 지가 50년 가깝다. 사실 국내에는 자연 호수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거대 호수는 댐으로 인한 인공호수이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저수지도 둑을 쌓아서 가둔 인공의 물이다. 그래서 수면 한쪽을 막아선 제방은 호수 고유의 그윽한 분위기와 자연미를 망치고 만다. 하지만 의암호는 길이가 8㎞에 달하는 거대 호수임에도 길이 273m, 높이 23m의 작은 댐으로 생겨나서 깊숙이 들어서면 댐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존재감조차 없다. 수백년 전부터 있던 자연호수 같다.

의암호 일주 자전거길은 북한강 자전거길이 2012년 12월 개통될 때 함께 완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코스만 확정되었을 뿐 군데군데 완성되지 않은 구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최근에 난구간이던 의암댐~송암레포츠타운~공지천공원 간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5월 중순 답사해본 결과, 공지천공원 서쪽의 KT&G 상상마당춘천아트센터에서 송암레포츠타운 간 호반절벽 구간 중 약 1㎞가 아직 공사중이었다(6월 완공 예정). 그러나 우회 도로변에 자전거길이 이미 있어서 의암호 일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사실상 일주코스가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사중인 데크 구간은 호반으로 붙어가서 경치가 더 좋고 지름길이라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신매대교 인증센터 옆에는 허름하지만 정겹고 맛도 있는 주막 쉼터가 자전거 여행자를 맞아준다

절경 뒤에는 전쟁의 상흔이

일주코스의 출발지는 춘천의 초입이면서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공지천공원의 에티오피아한국전참전기념관으로 잡았다. 코스는 주행 중 오른쪽으로 호반풍경을 보기 좋도록 시계방향으로 일주하기로 했다.

에티오피아참전기념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름답고 조용한 호반 곳곳에는 전쟁의 상흔과 기념비가 여럿 남아 있다. 춘천은 지금도 휴전선이 가까워 군사도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6·25 전쟁 초기부터 격전지였다. 에티오피아는 최근까지 가난과 기근으로 시달려온 아프리카의 빈국이지만 이름도 모르는 이역만리 타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국민의 목숨을 걸고 부족한 돈을 쓴 고마운 나라다. 총 6037명이 참전해서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니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고마움과 감동을 금할 수 없다.

의암호 서안은 동해안처럼 반듯하고 쭉 뻗은 호반길이 장쾌하다. 뒤쪽으로 멀리 의암댐이 보인다

공지천교를 지나 오른쪽 호반으로 빠지면 차분한 분위기의 공원 숲길이다. 길가에는 전구가 치렁치렁 달려 있는데, 춘천호수별빛축제가 열리는 현장이다. 5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저녁 7시30분부터 밤 10시(주말은 11시)까지 점등된다고 하는데, 나는 밤까지 있을 시간이 되지 않아 아쉽게 지나친다.

춘천MBC 북쪽을 돌아나가는 데크로드는 경관도 좋고 운치 있지만 보행자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데크로드를 지나면 이제는 문을 닫은 중도선착장으로 이어진다. 의암호 가운데 떠 있는 중도(상중하 세 섬으로 이뤄짐)에는 유명한 장난감 브랜드인 레고랜드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2017년 3월 완공 예정).

막 꽃이 피고 있는 감자밭과 넓은 호수 그리고 쭉 뻗은 강변길이 춘천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다

삼악산과 의암봉 사이 대협곡지대

중도선착장 뒤편으로 절벽을 돌아나가는 데크로드는 아직 공사중이어서 도로변의 자전거길로 우회해 각종 체육시설이 모여 있는 송암레포츠타운으로 직행한다. 송암레포츠타운 남단에서 의암댐까지 2.2㎞ 구간은 의암호 호반길의 백미다. 길을 만들기 힘든 강변 절벽에 교묘하게 데크로드를 부설한 정성이 대단하고 한편 고맙다.

산줄기를 돌아나가면 작은 만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다리가 턱 걸려 있다. 좁고 높은 다리 자체도 스릴 넘치는데, 다리 한가운데는 바닥을 유리로 만든 스카이워크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평균대 같은 폭 10㎝ 남짓한 골격을 제외하면 온통 유리바닥이다. 아라뱃길과 부산 오륙도 등 전국에 이런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여기가 가장 놀랍다. 혹시나 안전사고가 걱정되어서인지 시 관계자 두 사람이 지키고 서서 맨발로 들어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걸 보려고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강변도로에서 가까워 차편을 이용해도 조금만 걸으면 올 수 있다.

소양강 처녀 상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소양강제2교

스카이워크 이후 강변도로를 따라 의암댐까지 이어지는 높직한 언덕길도 대단히 빼어나다. 깎아지른 절벽이 좌우로 밀려들 듯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지는 협곡길이다. 호수 저편은 기암절벽으로 빼곡한 삼악산(654m)이, 길옆에는 의암호의 이름이 유래한 옷바위(衣岩)가 삐죽한 의암봉(315m)이 수직단애로 우뚝 서 있다. 춘천분지의 수문장 같은 두 험산 사이의 협곡을 활용한 덕분에 작은 댐으로도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탁월한 입지 선정이다. 이 협곡만 트인 채 호리병 같은 분지에 갇힌 춘천은 생래적으로 언젠가는 호반의 도시가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현대의 공학이 이런 천혜의 입지를 놓칠 리가 없다.

소양강 처녀 상 부근은 이제는 전설이 된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무대다. 주인공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눈 운명의 장소라는 일본어 설명이 붙어 있다

탁 트인 고속도로 같은 서안길

의암댐을 지나 서쪽 호반길로 접어들면 리아스식 해안 같은 동안과 달리 단순하게 쭉 뻗은 호반길이 장쾌, 통쾌하다. 뒤에서 남풍까지 불어주니 페달에 발만 얹어도 그냥 쑥쑥 나아간다. 호수면이 가까워 바람에 찰랑이는 물결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탁 트인 조망은 호반길이 아니라 해변길 같은 개방감을 준다.

쾌속으로 질주해 태양광발전소로 변신한 붕어섬을 지나 서안길의 중반을 넘은 애니메이션박물관까지 순식간이다. 1㎞ 남짓 더 가면 격조 있는 시비(詩碑)가 즐비한 춘천문학공원이다. 문학공원에서 잠시 둑길을 돌아나가면 금산리의 구릉지 호반을 지나는 데크로드가 시작된다. 수면 높이로 바짝 낮아진 이 길은 1㎞ 가량 이어지며, 느린 미니벨로 속도마저 아쉬울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정겹다.

다시 동안으로 이어지는 신매대교 직전, 옛날의 오미나루터에는 강원경찰충혼탑이 우뚝하다. 역시 전쟁의 상처인데, 강원도에서만 667명의 경찰관이 전사나 순직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제는 추억이 된 나루터는 잡초에 묻혀가고, 충혼탑에는 인적이 없다.

현대의 ‘소양강 처녀’는 저고리 대신에 핫팬츠나 청바지를 입고 강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

신매대교 인증센터 옆에는 꼭 옛날 주막 같은 허술한 가게가 있다. 해맑고 친절한 순이네 아주머니 표정에 끌려 들어섰더니 막걸리를 걸친 마을 촌로들의 입담이 한가롭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주머니의 비빔국수 솜씨가 예사 아니다.

상중도는 고구마섬이라고도 하며, 1990년대까지 자동차 경주장으로 쓰여서 코너마다 설치된 심판용 포스트가 아직도 빛바랜 채 서 있다. 한때 자동차 기자로 경기를 취재 왔던 오랜 기억이 나서 슬쩍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제는 공터를 활용해 야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애처롭고도 매혹적인, 소양강 처녀

빨강과 파랑 교각이 아치를 이룬 소양제2교 아래로 소양강이 흘러든다. 다리를 건너면 이제는 춘천의 새 명물이 된 ‘소양강 처녀’ 상이 애처롭다. 18세 소녀일텐데 미모나 귀여움보다 애상이 앞서는 것은 순전히 동상의 모티브가 된 애창곡 ‘소양강 처녀’ 탓이다. 동상을 바라보는 노래비에서는 그 애처로운 노랫말이 무한 반복된다.

강바람에 옷고름을 날리며 왼손에는 갈대를 꺾어들고, 오른손으로는 치마폭을 살짝 걷어 올린 자태가 아주 인상적이다. 애처로우면서 어딘가 새초롬함과 교태도 느껴진다. 아련한 교태가 감도는 것은 은근히 걷어 올린 치마폭 때문일텐데, 이 가림과 노출의 함수는 항상 특별한 감상을 동반한다.

다시 돌아온 공지천공원. 오리배가 가득하던 호반 유원지는 이제 카누와 카약이 점령하고 있다. 바다와 강, 호수, 저수지가 지천으로 있으면서도 유달리 물과 친하지 않은 우리 국민성 때문에 전국의 강과 호수는 농공업용수의 활용 외에는 텅텅 빈 채 방치되어 국토의 활용 측면에서도 항상 마음에 걸렸다. 이제 물 위의 자전거라고 할 수 있는 카누와 카약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지 않을까 싶어 반갑다.

이렇게 의암호를 일주하면 27㎞ 정도 된다. 의암호 일주 거리가 마라톤코스(42.195㎞)로 알려져 있는 것은 마라톤코스는 신매대교를 지나 더 북상해서 춘천댐까지 돌아오기 때문이다. 추후에는 이 구간에도 자전거도로가 개설될 예정이다. 현재는 신매대교 동단에서 북쪽으로 4㎞ 가량 자전거길이 더 나 있다.

공지천공원 근처 호반 둑길을 달리는 아이들. 저전거 타는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신이 난다

귀가길에는 고속도로를 이용해 시내 남쪽으로 금병산(652m) 자락을 넘어 춘천을 벗어났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춘천의 전모가 점점 드러난다. 그러고 보면 춘천은 정말 특별한 도시다. 손바닥만한 평지도 찾기 힘든 극단적인 산악지대 한 가운데 정말 기적처럼 펼쳐진 분지이기 때문이다. 산에 둘러싸인 분지(盆地)도 평야와 대비되는 지형이다. 분지가 호수라면, 평야는 강이랄까. 분지 역시 정적인 분위기여서 묘한 신비감과 비밀스러운 느낌이 감돈다. 그런 분지에 호수까지 같이 있으니 춘천의 지형적 매혹은 배가된다.

뭔지 모를 비밀을 감춘 듯 고요에 감싸인 분지와 호수, 춘천(春川)은 이름처럼 봄에 특히 매혹적인데, 주위의 높은 산들은 아직 잿빛일 때 저지대는 신록으로 물들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봄날, “나, 춘천 간다!”는 선언은 차분한 설렘 속으로 떠나는, 감성의 역설과 호반의 낭만을 이해한다는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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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들기

자가용을 이용해서 장시간 주차할 경우, 공지천공원은 주차료를 받기 때문에 중도선착장 주변의 공터나 송암레포츠타운 주차장을 이용하면 무료다.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를 이용해 춘천역에 내려도 호반길이 지척이다(경춘천 전철은 평일에도 자전거 승차가 가능하다).

코스 주변 추천 맛집

●의암댐 닭갈비막국수 : 의암댐 옆에 있다. 주변에 다른 식당이 없어 이 즈음에서 식사해야할 때 유용하다. 닭갈비와 막국수 전문. 033-262-6191

●뚱순이닭보쌈 : 신매대교 동단에 있으며, 일반 닭갈비와 다른 닭보쌈을 내놓는다. 033-252-6366

●솔개미닭갈비 : 소양강이 합류하는 소양제2교 북단, 자전거길 바로 옆에 있다. 닭갈비 전문점이며, 자전거 거치대도 마련해 놓았다. 033-243-9370

숙박

●청화모텔 : 공지천공원 바로 앞에 있다. 중앙로 194. 033-253-1185

●플라워파크 : 증도선착장 뒤편 조용한 곳에 있다. 033-257-3989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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