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만 빽빽한 숲 속에 즐거움이 있을까 했다. 그것도 큰맘 먹고 나가는 해외여행에서 말이다. 자고로 짧은 해외여행의 백미(白眉)는 쇼핑이나 하면서 앉아서 주문하면 뚝딱 나오는 음식이나 즐기다 오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일기예보는 비 올 확률이 90%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일본 돗토리현 자연 앞에서 걱정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짧게 다녀오는 여행이라 몸에 배낭 하나 둘러매고 가볍게 떠나왔다. 돗토리현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은 가이케 온천 입구에 위치한 코그스테이션(COGSTATION). 자전거를 파는 가게인가하고 들어가 보니 미니벨로 자전거를 빌려준단다.
바다와 산이 인접해 있는 산인해안지방의 돗토리현은 자연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에코투어리즘(Ecotourism)의 바람이 일고 있다. 에코투어리즘이란 자연, 역사, 문화 등 지역 고유의 자원을 살린 관광을 뜻한다. 돗토리현의 자연을 두 바퀴로 달려볼 수 있는 코그스테이션도 그 일환으로 탄생한 곳이다.
영어로 코그(COG)란 자전거의 톱니바퀴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자전거를 달리다'란 의미의 일본어 코구(コグ)를 연상시켜 코그스테이션이란 명칭을 쓰게 됐다. 내친김에 1,500엔을 내고 하루를 대여하기로 했다.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호사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페달을 다이센산(大山)으로 힘차게 굴렀다.
시내를 벗어나던 도중 자전거가 그려진 간판이 세워져 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사이클 카페다. 돗토리현 내에는 사이클 카페로 지정된 음식점과 관광 시설이 약 19군데가 있다. 사이클 카페답게 자전거 주차 걸이와 공기주입기가 눈에 띈다.
발을 풀기에 잠시 머문 이곳에서는 젤라또를 팔고 있었다. 이곳은 농부가 직접 재배한 무, 녹차, 수박 등의 신선한 채소들을 이용해 젤라또를 만든다. 때문에 젤라또의 종류가 매번 바뀐다. 젤라또를 푹~ 한입 가득 베어 물자 자연의 맛이 살아있다. 녹차 젤라또도 어린 잎만을 사용해 만들어 쓴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창문에 담긴 자연풍경에 빠른 자동차도 느릿하게 느껴진다.
자욱한 안개에 묻혀버린 다이센산은 고요에 잠겨 있다. 다이센 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파도처럼 출렁이는 아스팔트가 숲 속으로 이끈다. 일본의 '아름다운 숲 길 100선'에도 선정된 곳이라 그런지 시선이 웅장한 나무들에 쏠린다. "어딜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자연을 벚 삼으며 달리니 오히려 혼자라서 좋다.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미끄러져 내려가는 내리막길에서는 "와~"하고 함성이 절로 나온다.
다이센의 숲을 이정표 삼아 달리다 보니 모리노쿠니 캠프장에 다다랐다. 자연의 기운이 감도는 모리노쿠니 캠프장은 간편하게 글램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국적으로 캠핑의 열기 휩싸인 국내에선 아직까지 글램핑은 생소하게 다가온다.
Glamorous와 Camping의 합성어인 '글램핑(Glamping)'이란 별다른 장비 없이 떠날 수 있는 캠핑을 말한다. 이곳 모리노쿠니 캠프장에서도 식기에서부터 텐트까지 캠핑에 필요한 장비의 모든 것을 대여해준다. 빽빽한 측백나무 숲에 둘러싸인 곳 한켠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장작도 쌓아올린다. 어느덧 자연과의 하룻밤 동침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가 마련됐다.
모리노쿠니 캠프장의 또 다른 매력은 넓은 초원이다. 캠프장의 약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초원에 전용 골프장, 미니 낚시터 등 약 20가지의 온갖 놀이시설이 마련돼 있다. 특히 그린힐사이드는 어른들도 체면을 잊은 채 동심으로 돌아가기 충분하다. 캠프장의 뒤쪽 숲으로 들어가자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했더니 바로 숲속을 가르는 지프라인 체험을 즐기는 소리다. 줄 하나에 의지해 약 100m의 숲을 빠르게 나르자 머리가 나뭇가지처럼 쭈뼛쭈뼛 선다.
"꼬르륵~" 배꼽시계는 어느새 저녁을 알린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화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인다. 사실 이곳은 음식도 전혀 준비해올 필요가 없다. 미리 예약만 한다면 바비큐, 카레, 소바 등 다양한 음식 재료를 준비해준다. 하지만 캠핑의 재미의 절반은 요리의 준비와 하는 재미가 아니던가.
먼 일본까지 와서 요즘 한국의 캠핑요리의 대세인 '비어캔치킨'을 시도했다. 미리 재어놓은 닭을 꺼내 맥주가 1/3정도 남아있는 맥주캔을 꽂아 달궈진 화로 위에 얹어 놓는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일본 캠퍼들이 배꼽을 잡는다. 그렇게 한 시간정도 지나자 주위 캠퍼들이 삼삼오오 화로 주위로 모여든다. 아마도 익어가는 치킨 냄새를 맡고 왔으리라. "스고이~"를 연발하는 그들의 기대를 차마 모른 채 할 수 없어서 노릇노릇 익은 닭을 공유했다. 한국, 일본 캠핑 음식을 서로 나눠먹자 어느새 친구가 된다.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캠핑장에는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하다. 블랙커피 위로 떠있는 별들이 도시의 어느 불빛보다 환하다. 이렇게 다이센 품속에서 숨 쉬고 있으니 여느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호사다.
돗토리현에서는 '숲·들·바다, 물의 순환고리와 사람들의 삶'이라는 테마로 오는 10월 19일부터 3일간 에코투어리즘 국제대회를 개최한다. 대회 기간 동안에는 다이센 숲 워킹과 다이센 다운힐을 사이클로 돌아볼 수 있으며, 돗토리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사구를 방문해 볼 수 있다.
☞ 여.행.수.첩
▶ 코그스테이션(COGSTATION)
주소:米子市皆生温泉4丁目1-20( 요나고시 가이케온천 4가 1-20/
가이케 온천・관광센터 맞은편)
영업시간 : 09:00 ~ 17:00(화-일 / 금·토요일은 18:00까지)
자전거 대여 : 20분 (무료) / 1시간 (500엔) / 3시간 (1,000엔) /
1일 (1,500엔) / 1박 2일 (2,000엔)
전화:0859-35-6785
URL:http://daisenwonder.com/p/eco/cogstation/
▶ 사이클 카페 [젤라테리아 라구루포]
주소:米子市淀江町佐陀1301-6 (요나고시 토요에쵸 사다 1301-6)
전화:0859-49-1074
▶ 고민가 카페 [이나카야]
주소:鳥取県西伯郡郡大山町大山26 (사이하쿠군 다이센쵸 다이센 2-6)
전화:0859-52-6110
URL:http://www.yamahakun.com/inakaya.html
▶ 모리노쿠니 캠프장
주소:西伯郡大山町赤松634 (사이하쿠군 다이센쵸 아카마츠 634)
전화:0859-53-8036
URL:http://www.japro.com/morinoku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