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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Y] 백두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산

바이크조선 | 2014.09.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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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을 넘어선 ‘지구적 풍경’

백두산은 넓이로 말한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장 넓은 산에는 든다. 평지로 보이는 경사도 2도 내외의 완만한 산록이 천지를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중국은 백두산 면적을 7만㎢라고 당당히 소개한다. 남한 전체가 약 10만㎢인데, 이 땅의 70%나 된다는 얘기다.

서파(西坡)로 외륜봉을 오르는 길목에서 내려다본 셔틀버스 상부 주차장과 끝이 아스라이 보이지 않는 백두산 기슭. 왼쪽 멀리 보이는 산은 망천아봉(2051m)으로 백두산에 딸린 기생화산이다.

화산(火山)은 우주의 풍경이다. 표면이 단단한 지구형 행성에서 화산은 지표 아래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에너지의 역동을 드러내주는 신호탄이다. 엄청난 에너지의 축적으로 내부에서 달궈지고 끓어오른 용암은 거친 분출로 폭발하며 어쩌면 지표면의 피부병처럼 평면에서 3차원 입체의 굴곡을 만들면서 행성의 표정을 만든다.

만약 산이 없다면 지표는 평탄할 것이고, 특징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구에 산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보자. 세상은 아예 밋밋한 평원이거나 바다일 수밖에 없다. 지구의 표정은 사라지고 정적과 획일성만 남은, 단조롭고 끔찍한 평면에 그칠 것이다.

해발 1200m 지점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둔종한 정상부

 

서파 정상에서 바라본 꽁꽁 언 천지와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2750m). 장군봉은 물론 북한 측 봉우리는 인적 없이 텅텅 비었다.

남한 면적의 70%에 달하는 백두산

지구는 활발한 지각 활동으로 화산이 아닌 산도 많이 있지만, 화성과 금성 같은 다른 행성에서 산이라고 하면 화산뿐이고 규모도 엄청나다.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화성에 있는 올림포스 산으로 높이가 26㎞로 에베레스트(8848m)의 3배에 달하고, 바닥 지름은 서울~부산 간을 넘는 500㎞나 된다. 지구에서도 산의 덩치는 화산이 가장 크다. 에베레스트가 가장 높지만 가장 넓은 산은 하와이의 마우나케아(4169m)와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가 꼽힌다. 이들 산은 바닥 지름이 100㎞를 넘는다.

그런데 이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산에 필적하는 산이 한반도에도 있다. 바로 백두산(2750m)이다.

백두산의 바닥 지름은 최대 150㎞ 정도에 이른다. 중국은 백두산의 면적을 7만㎢라고 홍보하는데, 남한이 10만㎢이니 남한 땅의 70%를 차지한다는 말이 된다. 중국 특유의 과장이 아닐까 싶겠지만 위성사진이나 지질분포도를 보면 전혀 엉뚱한 말은 아니다.

백두산의 영역은 천지에서 분출한 용암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굳어진 용암대지를 포함한다. 백두산에서 내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밀림이 펼쳐져 있는데, 겉보기는 대평원 같지만 실은 2도 내외의 경사도를 이룬 백두산의 산기슭이다.

왜 백두산은 높지 않을까

사람 키를 넘는 6월의 잔설

“백두산도 별거 아니잖아!”

천지 물이 달문을 통해 흘러내려 장백폭포로 쏟아지는 북파(北坡) 등산로 초입에 서면, 눈앞을 막아서는 기괴한 화산체와 웅장한 폭포가 놀랍기는 하지만 높이나 스케일은 예상보다 훨씬 못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백두산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엄청난 착각이다.

중국측 백두산 최고봉인 천문봉(2691m)을 오르는 북파 코스의 버스 출발지점이 이미 해발 1700m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거쳐온, 거의 평지 같은 기나긴 숲길 전체가 백두산 자락인 것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평지 같은 기슭을 뛰어넘어 마지막 남은 1000m 정도의 종상(鐘狀) 화산체만 보고 산이 높지 않다고 하는 꼴이니, 나무의 어깨춤에 올라 위만 보고 나무가 높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지다.

중국측 백두산 관광의 거점인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예로 들면 천지에서 북쪽으로 45㎞나 떨어져 있고, 백두산이 아스라하게 보여서 산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실은 해발 750m나 되는, 여전히 백두산 기슭이다. 수평으로 45㎞ 가는 동안 북파 산문까지 수직으로는 겨우 1000m 높아졌으니 산기슭이 아니라 평지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중국측 백두산 등산로는 장백폭포가 있는 천지 북쪽면의 북파 외에 서쪽의 서파(西坡), 남쪽의 남파(南坡) 세 곳이 있다. 북파는 국내에서 직항편이 있는 연길(延吉)에서 상대적으로 가깝고, 장백폭포와 천지 수면까지 접근할 수 있어 제일 먼저 개방되었다.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연길에서 가깝다지만 그래도 250㎞나 된다.

백두산에서는 거리 개념이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다. 우리가 예상하는 숫자에 0을 하나쯤 더 붙인 것만 같다. 연길에서 이도백하까지 200㎞, 이도백하에서 북파까지 45㎞, 이도백하에서 서파까지 85㎞, 이도백하에서 남파까지는 180㎞다. 백두산 코 밑에 있다는 이도백하에서 남파까지는 무려 서울~논산 거리다.

잔설 쌓인 6월의 서파

서파 정상의 북한-중국 간 5호 경계비. 맞은편 북한쪽 능선에는 경비병도 없이 무인지경이다. 국경선에는 노끈 하나가 헐겁게 걸쳐 있을 뿐

나는 북파, 서파, 남파를 모두 올라보았는데, 지난 6월초 다시 서파를 찾았다. 북파는 폭포와 협곡, 천문봉 정상의 장쾌한 파노라마가 좋지만 너무 눈에 익어 식상하다면, 서파는 완만하게 올라서 마치 외계 같은 풍경을 차분히 감상하기 좋다. 남파는 압록강 상류를 거슬러 오르며 다양한 지형과 식생을 경험할 수 있어 다채롭다.

이도백하에서 서파 입구까지는 자동차로 꼬박 1시간30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천지를 감싸고 있는 외륜봉(外輪峰) 직전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하는데, 산이 바로 마주 보이는 해발 1000m의 고지인데도 다시 39㎞를 더 올라야 한다. 과연, 백두산이 넓구나 실감한다.

때이른 무더위가 찾아와 낮 기온은 25도를 넘었지만 예전의 악몽을 기억하고 외투를 단단히 준비했다. 백두산은 기온 차와 날씨 변화가 극심해서 산 밑은 여름이라도 산꼭대기는 겨울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해발 2470m 주능선에 올라섰는데도 바람은 잦고 기온도 높아서 반팔, 반바지 차림도 어색하지 않다.

놀라운 것은 이 날씨에도 심한 곳은 사람 키를 넘을 정도로 쌓여 있는 잔설과 탱크라도 지날 수 있을 뜻 꽁꽁 얼어붙은 천지다. 저 강렬한 햇빛도 천지의 얼음과 눈은 영원히 녹이지 못할 것만 같다.

국산 차와 국산 브랜드 음식점, 한글로 가득한 연길 시내. 한자만 빼면 서울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통일 되면 조선족자치주는 또한번 상전벽해를 맞을 것이다.

천지는 언제나처럼 장엄했지만 풍경의 충격파도 햇살에 기화되어 버린 듯, 압도적이지는 않다. 망원경으로 보니 맞은편 천문봉 정상에는 군함이 입항할 때 병사들이 갑판에 도열하듯, 관광객들로 빈틈이 없다. 하지만 북한에 있는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50m)에는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인적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다.

중국은 백두산 최고봉을 천문봉이라고 표시하고 높이도 2691m로 표기하는데, G2를 자부하는 대국 치고는 참으로 좀스러운 소갈머리다. 현지에서 들은 안타까운 소식은 또 있다. 길림성에 속한 연변조선족자치주(약칭 연변)는 우리 선조가 개척한 곳으로 면적이 4만3천㎢에 달해 남한의 43%나 되는 엄청난 땅이다. 중국측 백두산 진입로는 대부분 자치주에 포함되었으나 길림성이 ‘장백산(중국의 백두산 명칭) 개발관리위원회’를 따로 설치하고 직속으로 두면서 사실상 연변은 백두산에서 소외된 것이다. 이미 백두산 관광객의 80% 이상이 중국인이고, 백두산은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에베레스트는 네팔과 중국 국경에 솟아 있다)를 비롯해 수많은 고산과 명산을 보유한 중국에서도 10대 명산으로 꼽히는 ‘그들의 산’이기도 하다.

연길로 돌아오는 길. 사고로 길이 좀 막히기는 했지만 가도 가도 여전히 백두산 자락이다. 서파에서 연길까지 자동차로 장장 6시간이 걸렸다. 백두산 관광의 출발지라는 그 연길까지.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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