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수리산으로 떠난 봄맞이 라이딩
“어제 뒷산에 갔다가 복수초 봤당께. 바람꽃도 펴부렀고, 노루귀는 오늘내일 하더마. 여긴 벌씨로 봄이 와부렀당께!”
며칠 전부터 남도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왔다. 오늘 보니 긴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어 다시는 녹지 않을 것 같던 아파트 화단에도 어느새 새싹들이 ‘뾰족뾰족’ 고개를 내밀었다. 봄이다! 서울에도 남도의 꽃소식에 들었던 봄이 왔다.
‘봄!’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겨우내 무겁게 눈을 이고 섰던 가로수들도 한결 가볍고 생동감 넘쳐 보인다. ‘봄의 찬가’라도 부르고픈 날이다. 이런 때면 봄나들이가 제격이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겨우내 베란다에 내동댕이치다시피 밀쳐두었던 자전거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라이딩을 떠나자.’
“권 선생님. 안녕하세요? 수도권에서 초보자들을 위한 MTB 코스로 괜찮은 데 추천 좀 부탁드려요.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라이딩 한 번 가시죠!”
MTB 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 지금은 여의도에서 자기 이름을 딴 ‘권영학 MTB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권영학씨에게 연락했더니 일말의 주저함 없이 “군포 수리산으로 갑시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봄기운 완연할 때 그만한 곳이 없다며.
군포시와 안양시, 안산시에 걸쳐 있는 수리산은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 내로라하는 산이 즐비한 수도권에서 비록 명산의 반열에 들진 못하지만 산 주위로 세 도시가 둘러싸고 있는데다 삼림욕장을 겸하고 있어서 사철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고봉이 489m로 비록 높이는 낮지만 경기 남서부의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이 일대에서는 제법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태을봉(498m)과 관모봉(426m), 수암봉(398m), 슬기봉(469m)을 가운데 두고 생활하는 도시 사람들에게 수리산은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다.
접근성, 안전성 빼어난 수도권 명코스
수리산 등산로는 원래 병목안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했지만 이제는 안양, 안산, 군포시의 들머리 몇 개를 기본으로 한 등산로가 다양하게 나 있다. 관모봉에서 태을봉 거쳐 슬기봉, 수암봉을 잇는 5시간쯤의 종주산행도 가능하다.
이처럼 높지 않으면서 도심에서 가까운 수리산은 MTB 초보자들이 찾기에 제격이다. 등산인들이 많이 찾는 병목안 계곡을 피해 슬기봉 남쪽으로 가면 제법 긴 임도가 발달해 있다.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졸업한 학교로 유명한 군포 수리고등학교 옆의 ‘수리산산림욕장관리사무소’를 들머리로 잡으면 코스 접근이 편하다. 그래서 우리도 약속장소를 수리고등학교로 잡았다.
권영학씨가 타고 온 차는 프레지오 6인승 밴이었다. RV 차량의 지붕이나 뒤편에 거치대를 부착해 자전거를 싣고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다.
“거치대를 사용하는 게 폼은 날지 몰라도 올리고 내리는 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밴의 뒤쪽 공간에 싣는 게 자전거에 안전하고 라이더에게도 편리합니다. 이 차엔 MTB 10대쯤은 거뜬히 실을 수 있으니 효율성도 매우 높죠.”
전국으로 MTB 투어를 다니는 권씨에게는 이만한 애마가 없다고 했다. 정말 실용적으로 보였다.
“수리산 임도는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와는 별개고 길지도 않아서 초보 라이더들에게 제격입니다. 도심에 있으니 퇴근 후 가볍게 야간 라이딩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고요.”
오늘 취재엔 MTB 아카데미 출신으로 6년차 라이더인 황종환씨가 동행했다. 그녀는 수리산 라이딩을 여러 번 온 터라 길이 밝았다.
“이름이 남자 같죠? 그래서 이름 잘 밝히지 않는데….”
그러나 밝은 성격에 예쁘고 환한 웃음이 그대로 새 풀옷 입은 봄처녀다.
전체적으로 완만, 도심 속 한적함 느끼기 좋아
앞 도로에 인접한, 군포시 중앙도서관 옆의 삼림욕장관리사무소가 들머리다. 여기서 나란히 자리한 성불사와 용진사까지는 꽤 가파른 경사의 콘크리트 포장도가 200m 이어졌다. 출발하자마자 오른쪽으로 지압로와 벤치, 샘터를 갖춘 삼림욕장의 시설이 보였다. 용진사 입구까지 한 번에 치고 오르기 딱 좋은 거리와 경사지만 라이딩 초반이어서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지그재그로 올랐다.
콘크리트 포장도는 성불사와 용진사까지였다. 다소 가파르던 경사도 예서 끝이 났다. 절을 지나면서 길은 순해지고 노면도 흙길로 바뀌었다. 양지바른 곳은 땅이 녹아 질퍽거렸다. 얼마간 산허리를 따르다가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어 오르니 벤치와 나무데크가 마련된 쑥고개(임도오거리)였다. 한쪽엔 ‘하늘정’이라는 현판을 단 4각 정자도 있었다.
“코치님, 여기 데크도 생겼네요. 지난번 라이딩 땐 없었던 거 같은데.”
“그러게. 사람에게 편하긴 할 텐데 저렇게 큰 시설을 꼭 여기다 만들어야 했나 몰라….”
웬만한 집 터 크기의 데크시설이 마음에 불편한지 권영학씨가 볼멘소리를 했다.
양지바른 이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따스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매일 산책삼아 오른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야생고양이 한 마리가 부비적대며 친한 체를 했다. 막 도착한 할머니 한 분이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 고양이에게 주셨다. 거의 매일 고양이 밥을 챙겨 먹인다고 해서 ‘고양이 엄마’라고 불린단다.
쑥고개를 벗어나니 그야말로 한적했다. 수리사 입구와 바람고개를 지나 부처골에 내려서기까지 임도가 계속 이어진다. 인적이 뜸해지자 권영학씨와 황종환씨가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냈다. 볕 좋은 임도를 따라 얼마쯤 갔을까, 앞서 달리던 권영학씨가 돌연 방향을 틀더니 돌아섰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한동안 내리막이어서 다시 올라와야 하니 차라리 남쪽 속달동이 있는 덕고개로 가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쪽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돌아오기도 편합니다.”
다시 쑥고개로 돌아온 우리는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해외 라이딩도 다니시나요?”
“자주 가죠. 네팔이나 백두산은 매해 거르지 않고 순례하듯 찾습니다.”
백두산의 경우 북파코스를 따라 오르는데, 관광객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출발한다고 했다.
햇살을 즐기던 우리는 다시 덕고개 방향인 데크 오른쪽 임도로 들어섰다. 약간의 내리막길에 진흙구간이 간간이 나타났지만 라이딩을 즐기기엔 더없이 좋아보였다. 임도가 적당히 굽이를 틀며 이어져 MTB 초보 라이더에게 안성맞춤 코스라는 게 권영학씨의 설명.
한층 가벼워진 바람이 온 몸을 스치고 지났다. 봄 햇살을 가슴 가득 안고 달리니 겨우내 움츠렸던 몸속 세포들이 모두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아직 꽃은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 한 줌에도 봄기운이 가득 담겼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진흙구간이 자주 나타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프레임 아래쪽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진흙덩이들을 보던 황종환씨가 한마디 던진다.
“오늘은 간만에 세차를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은데요.”
“그러네요. 오늘 산뜻한 봄기운에 찌든 마음을 씻었으니 자전거도 깨끗하게 씻어서 봄맞이 해야겠어요.”
높은 지대가 아닌데도 저 아래 복잡한 도심과는 딴 세상인양 고즈넉한 수리산 임도. 새소리가 한층 청아하게 들리고 페달을 밟는 느낌도 가벼운, 한적한 봄날을 달린 하루였다.
찾아가는 길 수리산은 수도권의 명산답게 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전철을 이용해 접근하기 좋다. 1호선 안양역, 명학역, 금정역이나 4호선 대야미역, 수리산역, 산본역 어디서 내리더라도 택시 기본요금 정도면 모든 들머리까지 갈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는 1번국도를 따라 안양까지 온 후 안양역 앞에서 우회전, 삼원극장 지나 수리산유원지로 접어든다. 과천에서는 47번국도-인덕원-관악로- 비산대교를 거쳐 거와예식장 앞에서 수리산유원지로 가면 된다. 안산 수암봉은 수인산업도로-목감·부곡동을 거쳐 수암봉주차장까지 가면 된다.
MTB 라이딩을 위해서는 군포시 중앙도서관이 있는 용진사 입구를 들머리로 잡아 수리산 임도로 접근하는 게 좋다. 수리산산림욕장관리사무소 앞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라 오르면 된다.
숙식(지역번호 031) 군포시나 안산시, 안양시에 숙박시설과 식당이 많다. 군포시 속달동에는 소고기갈비찜과 토종닭백숙을 잘하는 모아이가든(407-4027)이 있다. 백숙은 한 마리에 5만 원, 갈비찜 1인분은 1만5,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