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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ㅣ인도 히말라야 1,000km 자전거 여행 ⑤] 안녕, 탕! 고마웠어. 새 주인이랑 행복해야 해!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 2013.06.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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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출룽라고개를 넘어 머레이평원 지나다

라출룽라고개를 넘자 완전히 딴 세상으로 변했다. 나는 도저히 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믿을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라다크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나는 산과 계곡, 산맥 전체를 덮은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개로부터 팡(Pang)까지는 내리막길이라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눈을 뜨면 심장은 요동치고, 눈을 감으면 마음은 환상으로 치달았다. 굳이 두보의 방랑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으며 도잠의 이상세계를 상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바로 이 두 가지를 눈앞에서 온 몸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하늘과 땅은 마치 잎을 매단 은사시가 햇빛을 품고 별들을 쏟아내듯 노래를 불렀다.

사람이 사는 모양이 세사의 흘러가는 방향이라면 저 땅과 하늘은 시시로 변하는 인간사를 끌어안고 있었다. 물로 닦은 유리에 푸른 잉크를 부은 것 같은 하늘이었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버릴 듯 강렬했다. 하늘에 걸린 하현은 푸른 바다에 떨어져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간 은쟁반 같았다. 여행자는 종이와 붓과 책을 버리고 강에 이르러 배를 탔다. 배는 바다에 이르고 구름은 높으니 눈 안에 들어온 것 모두 큰 형상 안에서 뛰쳐나온 환상이었다. 여행자는 자유로웠으나 저 바다를 표현할 길이 없으니 애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를 버리고 바다에 숨는다면 단 한 줄의 글이라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차라리 눈을 감고 고요한 내면의 바다를 향해 배를 다시 돌려야 한단 말인가! 나는 걸어가는 자전거 위에서 사색했다.

라출충라고개를 함께 넘은 나의 소중한 길벗 탕.

머레이평원으로 들어선다. 홀로 가는 여행이기에 카메라를 땅이나 돌 위에 놓고 타이머를 맞춰 찍었다.

하늘에 매달린 바다는 빛나고 눈을 얼린 것 같은 설산의 잔해는 검은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경악한 후 평온했으며 방황하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아가는 자세는 편안하여 의지하지 않아도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았다. 눈이 머무는 곳마다 교묘하고 시원하며, 장대하고도 아득한 경치에 자전거 위에서 행복을 경험했다. 옛사람들의 노래를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가사가 나오는 것은 그 흥이 절정에 달했음이며 머릿속에 담았다가 나중에 필히 이 감흥을 기록하리라 했다가도 다시 잊고 마니, 이것이야말로 라다크가 주는 충격이었다.

좌우로 버티고 있는 절벽을 지나 시야가 확 트이는 곳으로 나오자 창해에 뜬 깃털을 봤으니, 분명 구름이었다. 절벽 아래로는 구불구불 물길이 이어졌다. 아! 신묘함이 이와 같으니 나는 지금 맨 정신으로 그것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선함이 마음에 있으면 스스로가 안일하고 번뇌가 심장에 있으면 초조함과 두려움이 손님처럼 방문했다. 보는 것 또한 그러하니 이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도 마음이 씻기지 않는다면 어찌 오감과 정신이 하나로 묶여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길은 계속 양쪽이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깊은 계곡의 꼭대기를 통과했다. 그러니 휘어진 길을 따라 눈앞에 나타나는 구름과 계곡의 형상, 봉우리와 산맥의 모습이 시시로 바뀌었다. 만약 가기를 중단하고 여기서 하루를 묵는다면 낙조가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그 또한 어떨까 상상했다. 근방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을까 여러 번 고민했다. 봉우리를 채운 바위는 흙 안에 숨었던 본래의 모습이며 무너져 내린 흙은 시간이 쌓아놓은 흔적이니, 그것들은 서로 어깨동무하듯 자연스럽게 라다크를 표현하는 거대한 조각품이었다. 잠이 든다면 달콤한 꿈을 꿀 것 같다가도 막상 해가 지면 무시무시한 정적으로 치달을 것 같았다. 나는 자전거 바퀴가 돌을 치는 소리를 들으며 겹겹이 포개어진 라다크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내리막길을 함께 달리는 탕

머레이 평원에서 본 주변 산들. 아침 햇살을 받아 살아있는 듯 빛난다.

탕과 나의 인연은 어디까지인가

내리막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자 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절벽을 쪼아 만든 길이니 여기서는 지름길도 없었다. 팡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니 나와 탕은 그 길만 달려야 했다.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탕은 엄청난 속도로 나를 추격했지만 급격한 내리막에서 달리는 자전거에는 미치지 못했다. 결국 탕은 나를 놓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탕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주변 풍광을 사진에 담았다. 그러면 탕이 가까이 와 숨을 헐떡거리면서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절벽은 굉장히 경사가 세고 폭은 좁아 조금만 달려도 공포감을 줄 정도로 어질어질했다. 탕이 쫓아오는지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보면서 핸들을 꽉 잡고 페달을 돌렸다. 계곡 바닥까지 내려오니 조금 전까지 보이던 바위 봉우리들은 뒤로 물러나고 시야에는 오직 완만한 흙으로 이루어진 구릉만 보였다. 그 위로 꽉 차 있는 하늘은 더 짙고 깊어 너머로 보이는 설산들이 뚜렷했다. 손바닥을 지나치는 바람을 세듯 심장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팡은 크지 않은 마을이었다. 제법 큰 부대가 있고 주변으로는 다바와 민가가 있는데 전부 합해야 열 가구 정도였다. 마을 입구에서 한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오늘은 이 마을에서 쉬어가라고 하였다. 그는 내 뒤에 따라오는 탕을 보더니 더 놀라는 눈치였다. 첫 번째 다바에 그대로 여장을 풀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릴 힘도 없었다. 다행히 주인은 매우 공손해 함께 온 탕에게도 친절했다. 탕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전거를 세워놓은 곳에 앉아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켰다.

짜빠티를 시킨 후 탕에게도 줄 음식을 부탁하자 젊은 주인은 자신도 개를 몹시 좋아한다면서 걱정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어떻게 탕과 친해졌느냐면서 개를 갖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식사를 마친 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탕에게 음식을 건네고 나서야 나도 식사를 하였다. 저녁을 마치고 다바 안으로 들어와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뒤이어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독일 젊은이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각각 이스라엘과 헝가리 청년이었다. 모두 식사를 마친 후 다바 안에 모인 우리는 이런 저런 여행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혼자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는 내게 “엄청나다(Great)”며 “부럽다”고 말했다. 대화가 무르익음에 나는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으니 좋았으며 함께 여행하며 느낀 감정을 공유하니 또한 유쾌하였다.

탕은 들개지만 영리하여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듯 했다. 탕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연의 고리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머레이평원의 초입에 있는 이정표. 만약 이것마저 없었다면 더 외로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내 마음을 꿰뚫은 탕

팡에서의 하룻밤은 편안한 밤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주문하고 밖으로 나오니 탕은 자전거 옆에 엎드려 있었다. 탕은 나를 보자마자 다리를 쭉 뻗으며 반가움을 표시했으며 나 역시 탕의 목을 쓰다듬으면서 사르츄에서 여기까지 나를 안내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아! 그러나 이미 전날 주인에게 나는 탕을 여기에 남겨두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주인 여자는 탕을 몹시 탐내며 보기 드문 명견이라면서 개를 여기 남겨놓고 가면 잘 보살피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허락했다. 사실 탕을 여행 내내 데리고 다니고 싶지만 어차피 레(Leh)나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는 헤어져야 할 운명이다. 그렇게 되면 탕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더구나 탕은 특성상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에서만 사는 티베트 개이기 때문에 4,000m 밑으로 내려갈 경우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탕에게 초콜릿을 준 후 조용히 탕의 목을 끈으로 묶으려 했다. 그러자 탕은 저만치 물러나더니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내 뜻을 꿰뚫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먹을 것으로 탕을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고 오직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다시 탕을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탕, 나도 너를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더 먼 데로 가야 하고 어차피 우리 둘은 헤어져야 한다. 다행히 여기 주인이 너를 좋아하니 아무래도 너를 여기에 두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 탕! 내 부탁을 들어 주렴.”

도로작업을 하기 위해 인도 전역에서 모여든 인도 최하층민들. 날씨가 춥기 때문에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다.

중간에 만난 티베트 유목민. 라다크 전통 복장을 한 할아버지와 손녀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듯 간절하게 얘기하고, 또한 여자 주인이 옆에서 거들자 탕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탕의 목을 끈으로 묶은 후 텐트 옆 기둥에 다시 묶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특별히 음식을 주문해 초콜릿 두 개와 버터를 바른 짜파티를 탕에게 주었다. 내가 탕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인 셈이었다. 탕은 한동안 내가 준 음식을 먹지 않고 내 눈만 쳐다보았다. 평소 같으면 내가 먹지 말라고 해도 급히 먹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목에 걸린 끈을 풀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탕의 목을 쓰다듬으면서 어서 먹으라고 하자 그제야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했다.

출발 준비를 끝낸 후 밖으로 나오자 탕은 이미 밥을 다 먹고 내 자전거 옆에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탕에게 손을 흔들었다. 새로운 주인과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하고 그의 목을 끌어안자 탕은 끙끙거리면서 나와 헤어지는 것을 아는 듯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비록 탕이 라다크고원을 떠돌던 들개에 불과했지만 나와의 인연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탕은 대단히 영리했는데 그것은 이미 다바의 주인이 내게 얘기한 바였다. 탕은 천천히 머레이평원으로 오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탕!”

우직하며 신심이 깊은 티베트인들

머레이평원은 평균고도 4,600m의 대평원으로 5,300m의 타그랑라고개 못미처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런 망망한 자연의 품속으로 오직 나 혼자서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하늘과 땅과 빛이 주는 거대한 선물에 압도당했다. 때로 누군가와 이 기막힌 경치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다. 아! 그러나 이렇듯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라다크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내 자신이 만족하는 바였다. 누가 이런 숨 막히는 광경 앞에서 세사나 사사로운 감정 따위를 들추어 낼 수 있겠는가. 오직 눈에 보이는 감흥과 살갗에 와 닿는 공기로서 감동할 뿐이니 나는 마치 낯설고 생소한 곳에 갑자기 내려앉은 사람 같았다.

자전거의 두 바퀴는 허벅다리 근육의 바이오 엔진에 의해 쉬지 않고 돌았다. 오직 나 자신과 상의하고 스스로와 동무가 되었으니 이 평원을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영혼을 조종하는 저 라다크의 영혼이 몸 깊숙이 들어오자 지구라는 이 외로운 행성에 나는 또 다른 소행성이 되어 무인지경의 고원을 여행하고 있었다. 이렇듯 격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니 이것 또한 라다크가 주는 큰 선물이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털실을 이용하여 옷감을 짜는 라다크 여인.

라다크를 달리는 인도의 덤프트럭.

예전에 이곳은 엄청난 오지였다고 한다. 파키스탄과의 영토 다툼으로 인해 현재는 카라코룸과 히말라야, 라다크가 이분되었지만 실상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오직 대대손손 이 땅을 지키고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는 곳을 제한하고 경계를 지워 사람들의 왕래를 막아버린 것이다.

지금은 중국과 인도가 각각 다스리고 있으니 원래 하나로 통해야 할 물길을 막아놓은 꼴이 된 것이다. 현재 라다크를 덮은 주요 산맥은 잔스카르와 히말라야이다. 설산 밑에는 물이 흐르고 농경지가 있어 아무리 깊은 산속 고지대라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런 마을과 마을을 연결한 길이 오늘날 트레킹 루트로 이용되고 있다.

저 깊은 창공 한가운데 붉은색 꽃을 던진다면 곧바로 색이 바뀔 것인가, 아니면 창공이 그 붉은 꽃을 삼켜버릴 것인가. 길옆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로를 보수하고 있는데 그들은 일반 인도인의 피부색보다 더 검은색이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인도 전역에서 모여든 일정한 직업이 없는 그들은 사회 구조상 최하층민이었다. 그들은 인도 최북단 고지대에서 국가가 시행하는 사업의 노동자로 일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나 손을 흔들며 잠깐 쉬어가라는 말을 던졌다. 내가 어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그러면 나는 자전거를 세웠다. 비록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오로지 얼굴의 근육을 오므렸다 펴기도 하고, 때로는 눈가에 골이 지도록 웃다가 하늘로 시선을 옮기기도 하며 그들과 대화했다.

티베트 유목민 할아버지와 손녀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녀는 영어를 할 정도로 명석했다.

달리면서 우측을 보니 설산군이 내다보이는 구릉 밑으로는 제법 넓은 초지가 있고 그 밑으로 양떼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고원의 가장자리로 달리는 산맥의 검은 봉우리에는 얇은 만년설이 비단으로 덮은 검은 통처럼 놓여 있었다. 초지 한편으로는 유목민 거주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정적인 수분 공급원이 있으니 계속 풀이 자라고, 이곳 특성상 풀이 있으면 유목민이 살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얼마쯤 가다보니 할아버지와 손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이들은 분명 티베트인이었다.

라디크인들은 인도인처럼 서양인 특성이 있는 데 반해 노인과 소녀는 얼굴 특성상 티베트인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따시딸레!”하고 외치며 티베트식으로 인사하자 두 사람은 곧바로 알아듣고 응대했다.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티베트인 특유의 피부색과 무뚝뚝하면서도 신심이 배어나오는 듯 우직한 표정은 티베트인 특성 그대로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크하거나 아니면 이따금 다니는 정기 노선 차량을 타고 멀리 레(Leh)나 인근의 더 큰 마을로 나가려는 것 같았다.

소녀는 간단한 영어 정도는 말할 정도로 명석했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사람을 대하고 주변을 바라보며 낯선 사람의 말에 대꾸를 하는 것이 우리의 어릴 때 모습과는 달랐다. 이처럼 거칠고 혹독한 환경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삶으로 되어버린 이들이 힘들어하는 이방인을 보는 것은 오히려 신기할지도 모른다. 라다크인들은 삼보를 소중히 여기며 인과를 철저하게 믿으니 현재의 행위에 정성을 다하고 과거의 행적을 뒤돌아보는 것에 면밀하며 미래를 대비함에 소홀함이 없다. 먼 옛날 이곳 주변에서 수행했던 수많은 티베트의 현자나 승려, 수행자들은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마치 보살 같은 설산을 바라보며 신심과 구도의 일심으로 진력했을 것이다. 그 흔적들은 지금까지도 빙하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처럼 큰 강이 되어 이 고원을 적시고 있다.

주황색 안료처럼 땅을 누르고 있는 산맥 위에는 낮은 흰 구름이 떠 있고 어디선가 수행자의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곧이어 목동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며 설산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풀잎을 보듬었다. 경건한 소리는 허파에서 심장으로 관통하고 평원 저 너머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인과의 수레바퀴가 선명했다. 그러니 이 나약한 여행자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결심의 끝을 다듬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