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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 인도 히말라야 1,000km 자전거 여행 ⑧] 평범한 모습으로 비범하게 사는 라다크 사람들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 2013.09.2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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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에서 후트라고개로 가는 고독한 황무지길

레(Leh)로부터 님무(Nimmu)로 가는 길은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 있었지만 꾸준한 오르막으로 자전거를 타는 데 힘든 길이었다. 날씨는 쾌적하고 빛은 눈부셔 마을과 산이 어우러지니 보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는 구간이었다. 하지만 높은 고도와 쏟아지는 뜨거운 빛을 몸으로 감당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칼체에서 라마유르로 이어진 길.

‘천하는 넓고 후세는 요원하다’는 말이 있다. 행동과 생각이 번거로워 고통스러울 때 이 말을 떠올렸다. 스스로 과거와 현재를 통달하여 환히 꿰뚫을 수 있는 혜안과 재주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그 어떤 재주도 없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은 자신의 줄기와 잎으로 다시 자신을 덮는 돌단풍처럼 내 안에서 자족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위로 오를수록 산맥과 구릉, 구름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여행의 반환점을 지나니 편안해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긴장감이 풀어지고 행동이 느슨해져 힘들기도 했다. 여행 내내 훌륭한 풍광이나 본받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비록 기려하고 담백한 표현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거친 표현일지라도 몇 구절 시를 읊조리기도 했다. 혼자서 달리는 고독한 여행이었지만 자유롭게 산맥과 평원을 달리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자전거 위에서 자유로웠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원과 눈이 앉은 높은 봉우리로부터 다가오는 영적인 기운은 이미 내 옷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면 편안했으며 생각에 담으면 내면은 깊어지고 넓어져 무량한 바다 위에서 스스로를 잘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답고 넉넉했다. 부디 이 모든 것을 여행이 끝난 뒤에도 잘 보전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참 오르막을 오르다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었는데 멀리 우측 산맥 끝으로 설산군이 보였다. 그것은 필시 설산 밑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마을이 있음을 암시했다. 언덕을 잡아채듯 오르니 마침내 웅장한 계곡과 계곡 밑을 유유자적 흐르는 강을 만났다. ‘잔스카르강’ 이었다.

언덕 높은 곳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보니 제법 큰 마을이 보였다. ‘님무’라는 마을로 배산임수의 지형이 특징이었다. 뒤로는 쉬지 않고 물을 대주는 설산이 있으며, 앞으로는 인더스강과 잔스카르강이 합류하는 그리하여 파키스탄 카라코룸으로 흘러가는 중요한 통로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서부 티베트고원 마나사로바호수로부터 흘러나온 인더스는 빙하가 녹아내린 잔스카르의 탁류를 보태어 파키스탄의 카라코룸으로 나아가니 영적인 기운과 신비함이 많은 강이었다.

라다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길쭉하게 자란 백양나무들이 마을을 덮고 있었다.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였으며 바람 한 줄기로도 적정이 무너질 정도로 고요했다. 주요한 작물은 밀이고 파키스탄처럼 감자를 재배하는 곳은 드물었다. 마을 변두리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스투파나 작은 곰파가 널려 있었다. 님무를 벗어나자 다시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였다. 하지만 그것에 길들여진 나는 오히려 편안했다.

오후로 들어서니 빛은 기울고 하늘은 더욱 높아졌다. 어깨는 무거웠지만 상쾌했으며 자전거 움직이는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이렇듯 고독하고 힘들게 신성한 땅을 여행하다 보니 머릿속은 아무것도 없는 창고처럼 빌 때가 있었다. 마치 도마 위에 놓인 음식 재료처럼 나의 사려와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을 상상할 뿐이었다. 지금껏 부끄러운 날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어쩌다가 의로운 사람의 일화를 듣거나 평범한 모습으로 비범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특히 라다크인들의 사는 모습이 그러했다. 나는 계속 인더스를 따라 달렸다.

잔인할 만큼 아름다운 산맥의 노을
늦은 저녁, 울레토포마을에 도착했다. 들판에서는 일을 마무리하기 위한 농부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이런 척박한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잉여 농산물이란 없다고 봐야 했다. 겨우 자급자족 할 만큼의 수확량이 전부이다. 그러니 이들은 서로 나누는 것은 일상이며 꼭 먹을 만큼을 심고 수확하는 것은 기본이다.

1 잔잔한 돌이 많은 언덕을 오른다.

창창한 고원의 날씨를 등에 짊어지고 아직 젊은 팔뚝을 허리에 괸 채 나는 농부들이 밀을 떨고 있는 장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꾼들은 돌아가면서 밀단을 통째로 탈곡기 안에 집어넣었다. 탈곡된 알곡이 떨어지는 한쪽 구석에서는 아낙이 우리네 옛적 대두 한 말짜리 통처럼 생긴 통에 탈곡기에서 쏟아지는 밀을 받아 쏟아 부었다. 어디든 땅에 물이 흐르기만 한다면 사막이건 아니면 이런 높은 고도의 황무지든 간에 경작을 할 수 있으니 물이 곧 생명이라는 얘기는 틀림없는 말이었다.

익지 않은 과일은 따지 않는다. 가득 차지 않았는데 쏟아 부을 이유가 없으며 마음 안에서 성숙하지 않았는데 꺼내어 세상에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떨어지는 빛을 껴안고 달리는 인더스를 바라보며 무거운 몸을 자전거에 의지한 채 페달만 돌릴 뿐이었다. 해가 기울면서 잘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아무리 가도 게스트하우스를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마을 근처에 텐트 칠 요량으로 부지런히 다음 마을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겨우 다음 마을에 닿아 게스트하우스를 물어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텐트를 치고 자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누추하더라도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에서 편안하게 자고 싶었다. 딱딱한 바닥에 등을 대더라도 텐트가 아닌 곳에서 하루를 쉬고 싶었다. 긴 빛이 지네처럼 천천히 발을 휘저으면서 발등에서 등으로 기어오르자 노을이 어지럽힌 산맥은 붉은색으로 채색되어 잔인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눌라’에 도착하기 직전, 계곡으로 급류가 쏟아지는 경치 좋은 곳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었으나 숙박료가 너무 비쌌다. 보통 이런 곳에서 하루 자는 데는 500루피 내외가 보통이었다. 레(Leh)에서도 하루 숙박료가 600루피였는데 1,000루피를 달라고 하니 의외였다. 사실 수중에 충분한 루피가 있었다면 그냥 숙박료에 관계없이 묵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에서 환전을 하지 않았기에 루피가 부족했다. 만약 카길에서 환전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남은 힘을 다해 눌라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산꼭대기에만 자국을 남긴 채 발끝은 이미 어둑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당연히 게스트하우스는 없었다. 별다른 방법 없이 마을 근처에 텐트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있는 상점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허탈한 기분으로 정신을 놓고 있는데 한 여인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가 보기에 내 몰골이 무척 안 돼 보였던 것 같았다. 그녀는 어디서 온 여행자냐고 물은 뒤 이 동네는 잘 곳이 없고, 여기서 30여 km를 더 가야만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당시의 기력으로 그 거리를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내가 근처 한적한 곳에 텐트를 쳐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여인은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막 밀 탈곡을 끝내고 주변을 정리하려는 농부들에게 갔다. 그리고 농부들과 뭔가 한참을 얘기하더니 한 청년과 함께 다시 왔다. 여인은 내게 청년을 소개시켜 주면서 오늘 이 청년이 나를 재워주겠다고 했다면서 따라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라마유르로 가는 새로운 길
청년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집에 들어가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마니차(불경이 새겨진 원통)가 있었다. 나는 너무도 정중한 청년의 호의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2 레에서 님무로 가는 길.
3,4  님무에서 만난 라다크 사람들.

이층으로 올라가자 방 하나를 내어줬는데 굉장히 넓은 방인데다가 바닥에는 카펫까지 깔려 있었다. 청년이 창문을 열고 잠자리를 준비해 주는 동안 그는 내게 저녁식사는 했냐고 물었다. 잠자리를 제공 받았는데 식사까지 대접을 받는다면 염치가 없을 터, 저녁은 가지고 온 비상식량을 먹겠다고 하자 청년은 잠깐 기다리라면서 밖으로 나갔다.

3,4  님무에서 만난 라다크 사람들.
5 밀을 탈곡하는 라다크 사람들.

잠시 후 그는 짜파티와 매기면을 끓여 왔다. 배가 고프니 처음 생각과는 달리 사양이고 염치고 다 사라졌다. 짜파티와 매기면을 먹고 그릇을 물린 후 자리에 누우니 곧바로 어둠이 찾아왔다. 고원의 밤을 이처럼 안락한 곳에서 쉬는 것은 처음이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낯선 벌레소리와 어울려 별빛이 쏟아져 들었다.

번한 빛이 창문을 때리자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행에서 굳어버린 습관 중 하나였다. 모포를 정리하고 주변에 꺼내놨던 것들을 모두 배낭에 넣었다. 마지막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긴 후 창문을 열고 10여 분 동안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밖은 새벽인지라 어디에도 빛은 없었다. 다만 번한 기운만 가득했다. 이따금 일찍 일어난 새들이 노래를 하거나, 아니면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은사시 속에서 깃털을 터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다시 종이를 꺼낸 후 펜을 들어 영어로 감사 편지를 써서 500루피와 함께 책상 위에 반듯이 놓았다.

1 라마유르로 가는 길에 만난 라다크 여인.  
2 카메라를 낯설어 하는 라다크 아이.
3 탈곡한 밀짚을 정리하는 라다크인 모녀.
4 계곡에 추락한 트럭. 이런 사고 트럭은 곳곳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는데 그 시간에 청년의 어머니인 듯싶은 여인이 밖에 나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합장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침식사라도 하고 가라면서 나를 붙잡았지만 더 머문다면 진실로 힘들 것 같았다.

문을 나서니 비로소 먼 곳으로부터 서늘한 바람 한 줌이 내 머리를 흔들었다. 편지의 마지막에 내 이메일 주소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인연이란 실제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라다크, 특히나 인더스강 주변은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경작지에 강물을 관개하는 것이 보기와는 다르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적 유속이 완만하고 강폭이 넓어 물을 끌어다 대기 편한 곳에만 경작지가 있고, 또한 자연적으로 생긴 습지에만 몰려 있었다.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는 밀을 수확하는 시기이기에 어디를 가든 밀을 떠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농사 이외에는 특별히 다른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민들이 농사짓는 데만 전력하였다. 평생 그들은 농사짓고 사원에 나가 경배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할 것이 없으니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대를 이어 평화롭게 살아갔다.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좀 더 높은 설산 밑에서는 유목을 하는 것으로 그들 평생의 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Leh)에서 카길을 거쳐 스리나가르까지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라 군부대가 많고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군수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트럭들이 다녀야 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이런 트럭 운전기사들을 위한 다바와 음식점, 그리고 정비소들이 많았다. 인도처럼 한 민족이 종교적인 이유로 갈라진 나라도 드물겠지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는 나라 역시 드물 것이다.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그 유명한 라마유르로 가는 길은 인더스와 이별하는 길목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사귄 연인처럼 내내 함께했던 강과 이별하니 섭섭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라마유르를 거쳐 레와 스리나가르의 중간 도시 카길로 통하는 도로로 접어든 것이다. 라다크 중심부로부터 가장자리로 접어들어 카슈미르와 접경지로 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더스와 헤어지는 구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을 건너는 다리를 통과하게 되었는데, 다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하루에도 저 다리를 통과하는 트럭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마치 임시 가교처럼 보였다. 더구나 많은 교통량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전거는 좌우가 높은 절벽으로 막힌 깊은 계곡 안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길옆으로 인더스로 흘러가는 작은 지천이 있었는데 수량이나 흐름이 만만치 않았다. 산꼭대기를 쳐다보니 검은 바위와 흙을 이불처럼 감싸고, 위로는 손을 담그면 얼 정도로 차가운 하늘이 버티고 있었다. 내 몸은 자전거 위에서 쾌속정처럼 깊은 내리막 계곡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리를 건너 왼편으로 들어서자 검은 계곡은 더욱 깊어져 마치 사방을 분간하기 힘든 캄캄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눌라를 출발한 후 오늘 점심 안으로 라마유르를 통과하고, 저녁나절이 되기 전에 후트라고개를 넘기로 작정했다. 흙탕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내리막은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어디를 봐도 앞으로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있는 경작지가 나오리라고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은 황폐할 뿐이었다.

계곡을 보다가 지루하면 하늘로 눈을 돌렸으며, 하늘에 정신을 빼앗길 즈음에는 다시 황막하고 험준한 계곡과 능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숨이 갈라지고 근육이 경직되면서 동시에 머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생각 덩어리들은 바위에 부딪치고 물살에 녹아내리다가 마침내 하늘에 이르러 종적을 감추었다.

5 라마유르를 향해 고개를 오른다.

혼자 하는 라다크 여행은 조그만 자유
혼자서 라다크를 여행하는 것은 참 유익하고 유쾌했다. 나는 여행 중 쉬거나 가거나 하는 행동을 내 스스로 결정했다. 그것은 조그만 자유, 그것이었다. 그러니 대가를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혼자 여행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감정이 만든 느낌을 노래하고 사유의 반쪽을 잡으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었다. 만약 내가 이 여행을 마다하고 집에만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다른 사람들과의 이해와 득실을 따지고 관계를 얽어 보며 넘침과 모자람, 찬반, 길고 짧은 것을 가리고 분별하며 종래 그것에 따라 나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