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최고 고도 라출룽라(5,065m)고개를 넘다
사르추를 기점으로 하늘과 땅, 날씨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마날리부터 지스파를 거쳐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밤에 약간의 비를 뿌리고 아침에는 구름이 많다가 점심 때부터 개는 날씨였다. 바랄라차라고개를 넘어서부터는 이런 몬순 날씨가 사라지고 밤낮으로 맑았다. 전형적인 고원의 특성이었다. 돌과 흙의 색깔은 경이롭기까지 했으며 구름을 얹은 봉우리는 오랫동안 빙하에 부대껴 침식되어 그 모양이 참으로 조화롭고 신비했다. 능선과 봉우리들은 언뜻 보면 서로 비슷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틀렸다. 바다를 쪼갠 절벽처럼 쉴 새 없이 눈앞에 드러나는 능선과 봉우리에 나는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좌로 시선을 주면 언덕이 나오고, 우로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바위벽과 마주하였다. 그러다가 좌측으로 흐르는 커다란 계곡과 부딪히기도 했으며 신묘한 바위 봉우리 위로 출렁대는 바다와 조우하기도 했다. 빙하와 비바람에 파이고 깎여 흘러내린 낙석과 흙은 다양한 색으로 보였는데 같은 색깔이라 해도 빛이 비추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빛깔이 확연하게 달랐다. 어느 때는 정신을 놓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다가 자전거 앞바퀴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급히 멈추기도 하였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이들 중 문득 신심이 강렬해지며 여기에 거처를 정하고 수행에 들어갔던 구법승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이 화석이 되고 뼈가 굽어 타버릴 때까지 정신의 강을 헤엄치던 구법승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뼈가 아마도 여기 어디쯤 묻혀 있을 것이다.
내 몸 안에 라다크의 심장을 넣고 싶다. 저 산맥 꼭대기, 눈 덮인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이 고동치는 소리를 내 뛰는 심장 박동과 동기시켜볼 것이다. 그러면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요동치는 라다크의 숨소리를 느끼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멀리서 보기만 할 뿐이었다.
라다크의 산줄기는 굵은 삼베옷의 주름처럼 거칠게 포개져 있다가도 평지에 이르러서는 얇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선으로 평원과 맞닿았다. 제각각 박혀 있는 돌은 서로 다른 기묘한 그림자를 만드니 위를 지나는 구름 그림자와 함께 어울려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있는 것이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건너편 높은 언덕을 낀 계곡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사르추를 출발한 지 세 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아침부터 창창한 빛이 머리 위로 화살처럼 떨어졌으며 산 색깔은 고원과 히말라야의 특징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 눈을 어지럽혔다. 능선의 어디를 보든 마치 고로의 흙벽과 같아 봉우리 속은 시뻘겋게 끓는 쇳물을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산맥과 계곡, 구릉과 설산은 명암 차이가 극명하였으며 빛이 강렬한데도 긴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은 높지 않았다.
친구이자 셰르파가 된
사나운 들개 탕
이틀 전 큰 홍역을 치르고 난 뒤라 급하게 페달을 돌리지 않았다. 당차게 나아가야 할 곳에서는 잠시 옷깃을 여몄으며 오르막에서 숨이 찬다 싶으면 자전거를 세웠다. 바퀴가 구르면서 단 1미터라도 앞으로 가지 뒤로 가는 것은 아니니 ‘레(Leh)’는 분명 가까워지고 있었다. 깃털을 뽑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구름,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 검은 바위들이 뿜어내는 말할 수 없이 기묘한 색깔은 눈앞에서 쉼 없이 변하고 멈추었다. 일관됨과 파격을 엇갈려 반복하니 라다크의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요 다큐멘터리였다.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수행이 필요하다면 여기 어디쯤 돌을 모아 움막을 짓고 거기서 산과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날은 참 신기한 일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자전거를 세우고 오른쪽 발을 들어 땅바닥에 착지하려는 순간이었다. 뒷발이 무엇가에 턱 걸리는 느낌과 함께 “깽”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으르릉” 하면서 소름이 돋을 것 같은 동물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내려서 뒤를 보니 맙소사, 뒤에 큰 개 한 마리가 저만치 물러나 나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티베트 야생 들개였다. 티베트 들개는 고원에만 사는 동물로 보통 고원의 유목민들이 양떼를 보호하기 위해 기르는 사나운 개였다.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 뒷머리가 곤두섰다. 마땅히 들개를 따돌려야 했지만 물리칠 힘도 도구도 없었다. 더구나 자전거 여행자에게 들개는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돌을 던져 쫓아버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만약 그렇게 하다가 개가 덤벼들기라도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전거로 앞을 막은 후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지간히 물러선 후 자리에 앉아 배낭을 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자전거 앞으로 다가가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만약의 경우 내가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무거운 카메라뿐이었다. 카메라를 보자 들개는 그것이 자신을 해치는 무기인줄 알고 털을 세우더니 흰 이빨을 드러내며 더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천천히 자전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나는 놀란 나머지 자전거를 팽개치고 카메라만 든 채 뒤로 물러났다.
자전거 가까이 온 개는 아예 땅바닥에 앉았다. 참으로 난감한 것이 들개는 자전거 여기저기를 이빨로 물면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자전거 가까이 가기라도 한다면 즉시 달려들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도움을 청하겠건만 오직 개와 나뿐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카메라만 든 채 자전거와 개만 쳐다보며 개가 돌아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가 문득 어떤 수의사로부터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동물들, 특히 개는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열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면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끈에 묶인 개가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나는 개를 향해 진중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을 해봤다.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들개는 그런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나는 일단 편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들개를 쳐다보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고 둘 사이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들개는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조금씩 경계의 눈빛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나는 먹이로 개를 유혹해 보기로 하고 조심스럽게 배낭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먹으면서 들개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자 처음에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끈질기게 부르자 들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두려움에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을 들개에게 던졌다. 들개는 천천히 초콜릿 근처로 다가갔다. 여러 번 냄새를 맡더니 한입에 삼키고는 천천히 먹었다.
아! 들개와 나는 졸지에 함께 여행하는 처지가 되었다. 동고동락하는 지우는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길동무가 된 것이다. 통성명을 하는 것은 동무에게 당연한 것이기에 내 이름을 얘기한 후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함이 마땅하지만 부를 만한 이름이 없었다.
여러 번 생각한 연후 길동무의 이름을 ‘탕’이라고 불렀다. ‘탕’은 티베트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인데 생각나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고육지책이었다. 길동무인 그도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저만치 떨어져 따라오다가도 “탕” 하고 부르면 느긋한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탕은 내 자전거 앞에서, 혹은 옆에서, 아니면 뒤에서 길을 안내하였다. 여러 번 여행을 하다 보니 참으로 별일을 다 겪는구나 싶었다. 철저하게 혼자였던 라다크 히말라야에서 함께 길을 가는 친구를 얻은 셈이었다. 나는 수시로 탕을 부르며 이따금 여행의 꼬리를 잡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메웠다. 그와 익숙하게 동행하다 보니 마치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동료처럼 탕과 교감하게 되었다.
내가 탕을 부르면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자전거 옆에 바싹 붙었다. 계속해서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내 속도가 여간 느린 게 아닌데 탕 역시 느린 걸음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다.
인생의 반 이상을 달려온 지금 꿈 아래 가라앉은 정서를 건져 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구차한 일이다.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들의 주체가 나였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깊은 호수의 바닥을 보기 위해 물을 퍼내는 것과 다름 없다. 동무가 된 탕은 그런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내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앞을 보면 가야 할 길이고 뒤를 보면 지나온 자취뿐이다. 두려워할 이유도, 서운할 까닭도 없지.”
구름 낀 날들이 인생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그래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슬픈 날도 없었다. 그것 또한 인생의 길이었다. 나는 이따금 탕을 바라보며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탕은 침묵할 뿐이었다.
더 높이 오를수록 기온은 내려갔지만 몸은 뜨거워져 입고 있던 패딩점퍼를 벗었다. 탕은 내 곁에서 한발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간혹 앞으로 가서 길을 안내하기도 했다. 지름길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일반 자동차 도로가 아닌 곳으로 안내하기도 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곳이었다. 내가 일반 차도로 들어가기 전에 탕은 미리 질러가는 지름길 입구에서 나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탕를 따라 끌바로 그 구간을 통과하였다.
탕은 정말 영리한 친구로 절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쉴 참에 내가 배낭에서 빵을 꺼내 버터를 발라 먹고 있어도 결코 가까이 오지 않고 주는 빵만 먹었다. 그러니 그와 나는 실과 바늘, 콩과 콩깍지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탕은 정말 사람과 통교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폭발할 듯한
5,065m 고개를 넘다
경사는 점점 세지기 시작하여 바랄라차라고개를 오를 때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였다. 쉬었다가 처음 출발할 때는 수 킬로미터라도 쉬지 않고 단번에 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500m 정도만 가도 숨이 차 쉬지 않으면 도저히 갈 수 없을 정도였다. 간혹 레(Leh)로 향하는 관광객들을 태운 차량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는 속도를 늦추며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카메라나 캠코더를 내 놓고 탕과 함께 언덕을 오르는 나를 촬영하기도 했다. 덕분에 탕과 나는 관광객들의 관광 상품이 되어 버렸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대신 그 자리를 바람소리가 메웠으며, 바람이 일지 않을 때는 페달과 바퀴 소리가 빈 공간을 채웠다. 산세는 점점 높고 험해지기 시작했다. 마른 흙과 암벽,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이 작은 골을 따라 흐르는 것이 고산지대 특징 그대로였다. 이제 탕은 처음 만났을 때의 두려운 존재에서 완벽한 내 동무가 되었으니 그가 없으면 심심하고 적적해서 여행을 못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는 법. 그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거리는 스리나가르 이전까지였다. 해발 3,000m 아래로 내려가면 탕은 견디기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탕은 고산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개이기 때문이다. 나는 탕과 함께 가면서도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긴박한 오르막이 조금 누그러지는 대신 고도가 더 높아지니 호흡은 더욱 가빠졌다. 탕은 이런 나를 배려하려는 듯 앞에서 천천히 길을 안내했다. 내가 멈추면 탕도 서고, 내가 페달을 밟으면 탕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너무 멀리 떨어졌다 싶어 큰 소리로 탕을 부르면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갈지자 길에서 탕은 어김없이 나를 지름길로 안내하였다. 아예 미리 지름길 입구에 버티고 앉아 내게 “이리로 가야만 빨리 갈 수 있으니 딴 생각 말고 따라오기만 하세요”이러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나야 뭐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안내하는 탕의 말을 따를 수밖에. 마침내 나는 탕의 도움을 받아 연속해서 두 개의 고개를 넘었다. 두 고개는 모두 ‘라출룽라’로 불리며 높이는 5,065m였다.
이틀 전 바랄라차라를 오르는데 고생을 했던지라 라출룽라를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옆에서 탕이 따라오며 동무를 해줬기 때문에 덜 힘들었다. 하지만 라출룽라는 두 개의 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였다. 탕과 나는 고개 정상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두 번째 고개까지 가려면 두어 시간은 더 달려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는 목적지가 아주 가까워 보여도 실제 달려 보면 상당히 먼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를 쓰고 달려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니 성질 급한 사람은 금방 지칠 수 있다. 편하게 마음먹고 느긋한 자세로 페달을 돌려야 한다.
푸른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고 빛은 벼린 보습 같았다. 재의 높이가 5,000m를 넘으니 지금껏 지나온 고개 중 가장 높았다. 심장에 든 것을 모두 꺼내어 펼쳐 놓을 수만 있다면 그중에서 번뇌만 골라 여기에 놓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번뇌 또한 내 친구가 아니던가! 숨을 돌린 후 작은 돌덩어리들이 가득한 길을 따라 다시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두 개의 라출룽라를 모두 넘으면서 날씨는 맑아져 하늘을 정면으로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로 강렬해졌다. 나는 출발할 때부터 아예 고글을 가져오지 않았다. 만약 이런 풍광을 고글을 통해서 본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색깔에 온 몸이 흠뻑 젖어버리니 나는 곧바로 라다크가 되었다. 누군가 먼 데서 자전거 타고 라출룽라를 넘어가는 내 모습을 본다면 라다크의 품 안에 있는 하나의 영혼으로 볼 것이다.
나는 탕이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자전거를 어떻게 따라오나 살폈다. 탕은 급경사를 거의 일직선으로 달려 오히려 나보다 앞장섰다.
※ 히말라야 자전거 여행에 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가능한 범주 안에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triplemankr@hanmail.net>